[O2칼럼/김현진] 스타일 인 셀럽<17>수천만원대 ‘심은하 패션’에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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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0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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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방선거일에 남편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심은하는 협찬 받은 코트를 포함해 수천만원에 달하는 명품 패션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그의 패션에 유난히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던 이유는 뭘까. 사진제공 연합. ☞ 사진 더 보기
최근 지방선거일에 남편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심은하는 협찬 받은 코트를 포함해 수천만원에 달하는 명품 패션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그의 패션에 유난히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던 이유는 뭘까. 사진제공 연합. ☞ 사진 더 보기

'옅은 화장을 한 청순한 얼굴에 단아한 패션을 선보이며 전성기 못지않은 미모를 뽐낸….'

지방선거일인 2일 자유선진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지상욱 씨와 함께 투표소를 찾은 심은하. 그의 패션은 '청담동 며느리룩' '내조의 여왕 패션' '심플과 럭셔리의 조화' 등 긍정적인 뉘앙스의 제목을 단 인터넷 기사들과 함께 단숨에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그가 입고 든 모든 패션 아이템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타조가죽 버킨백(2500만~4000만 원), 샤넬의 투톤 슈즈(150만~170만 원), 이탈리아 브랜드 피아자 셈피오네의 아이보리색 코트(147만 원),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미스지콜렉션의 감색 원피스(100만 원대) 등 총 수천만원대에 달하는 아이템들은 패션에 민감한 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유명 명품 브랜드의 의상을 차려 입고 공식 석상에 나선 데다 연예인 출신이라는 점이 같다는 이유로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 카를라 브루니를 연상케 한다는 해석도 나왔다.

▶ 심은하와 김윤옥, '버킨백'과 '켈리백' 사이 간극은?

그가 입은 피아자 셈피오네 코트는 수입업체로부터 협찬 받은 것. 현재 연예활동을 하지 않는 심은하에게 협찬하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이 업체 관계자는 "30대 이상의 우아한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 이미지와 심은하 씨가 잘 맞았고 미디어 노출 효과도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심은하 패션'이 화제가 된 이후 이 제품은 매진됐다. 선거 후 심은하는 이 코트를 직접 구입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그 만큼 구설수에 오르기 쉬운 때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가 해외 명품 브랜드의 의상으로 스타일링하고 또 일부 아이템은 협찬까지 받은 데 대해 일부에서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유력 정치인의 아내 또는 퍼스트레이디들의 패션이 남편의 인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해외 트렌드를 고려해 전략적인 스타일링을 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가 연예계 은퇴 후 포착된 모습에서도 종종 샤넬의 트위드 소재 투피스 패션을 선보였고, 친분이 깊은 디자이너 지춘희 씨의 미스지콜렉션 의상은 평소에도 즐겨 입는다는 사실을 들어 큰 의미는 없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면 약 3년 전 국내 정치인 아내 가운데 에르메스백으로 화제가 된 사례가 또 있었다. 지난 대선 운동이 한창이던 2007년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의 아내 김윤옥 여사가 에르메스의 켈리백을 든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 사위들의 회갑 선물이었다는 이 켈리백은 심은하의 버킨백과 달리 상대편 후보 캠프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선거와 후보의 비중에서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정치인의 아내였다. 그럼에도 대중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4월29일 중국상하이엑스포 공식 행사에 참석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부부. 카를라 브루니는 이 행사에서도 프랑스의 고급 주얼리 브랜드 쇼메 제품을 선보였다. 조세핀 황후의 우아함을 모티프로 한 쇼메의 ‘조세핀 컬렉션’을 선택한 것 역시 패션 전략이었을까. 사진제공 쇼메코리아.
지난 4월29일 중국상하이엑스포 공식 행사에 참석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부부. 카를라 브루니는 이 행사에서도 프랑스의 고급 주얼리 브랜드 쇼메 제품을 선보였다. 조세핀 황후의 우아함을 모티프로 한 쇼메의 ‘조세핀 컬렉션’을 선택한 것 역시 패션 전략이었을까. 사진제공 쇼메코리아.


최근 패션계의 가장 큰 화두는 퍼스트레이디 패션이다. 미국의 미셸 오바마와 프랑스의 카를라 브루니는 젊음, 아름다움, 지성을 바탕으로 전문 모델이나 스타를 능가하는 패션 아이콘 지위를 누리고 있다. 21세기의 패션 워너비(wanna-be)가 이제 모델도 스타도 아닌 퍼스트레이디로 옮겨온 것이다.

지난달 데이비드 캐머런 새 총리의 취임과 함께 198년 만에 영국의 최연소 퍼스트레이디로 등장한 서맨사 캐머런(39) 역시 이들의 계보를 잇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영국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으로 손색이 없는 미모와 패션 감각, 귀족적 배경을 가진 캐머런을 두고 '서맨사가 입고 쓰는 모든 것들이 화제가 되면서 서맨사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영국은 더 발전된 버전의 브루니를 얻었다'(데일리메일), '영국 역사상 어떤 총리 부인도 서맨사보다 중요하지 않았다'(가디언)며 호들갑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케이크를 굽고, 장미를 따고, 자선 단체에 얼굴을 내미는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은 지난 몇 년 새 크게 변했다. 캐머런은 오바마, 브루니가 일으킨 신 퍼스트레이디 시대에 맞춰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해 남편에게 힘을 실어주게 됐다'고 보도했다.

캐머런은 고급 문구와 액세서리 브랜드 스마이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이다. 14년간 이 브랜드에서 일한 그는 진부하고 오래된 브랜드를 패셔너블한 이미지로 전환시키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950파운드(약170만원)짜리 '낸시백'을 디자인해 영국 내에서 '잇 백'의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또 그의 여동생 에밀리 셰필드는 패션잡지 보그의 부편집장이다. 패션과 관련된 경력을 가진데다 평소 입는 옷차림마저 감각적인 그의 등장에 이웃나라 브루니를 질시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영국인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새 영국 총리 부인 서맨사 캐머런 여사는 패션 관련 경력과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영국도 브루니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이터.
새 영국 총리 부인 서맨사 캐머런 여사는 패션 관련 경력과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영국도 브루니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이터.


그는 버버리, 스텔라 매카트니 등 영국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들의 의상을 막스앤스펜서, 자라 등 중저가 의류와 믹스&매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막스앤스펜서에서 구입한 65파운드(약 12만원)짜리 물방울무늬 원피스와 자라의 29파운드(약 5만2000원)짜리 회색 하이힐차림을 종종 선보이는가하면, 공정무역방식으로 수입된 네팔산 고급 스카프(616파운드¤약 110만원)을 두르기도 한다. 즐겨 입는 브랜드 중 하나는 '런던의 새로운 천재'로 꼽히는 터키계 디자이너 브랜드 에뎀(Erdem). 영국 디자이너를 좋아하고, 최고급과 중저가를 오가고, '착한 소비'를 지향하는 그에게 쏠리는 관심은 점점 높아만 가고 있다. 그는 영국 패션잡지 태틀러가 선정한 2010년 베스트드레서 순위에서 브루니를 6위로 밀어내고 5위를 차지했다.

영국의 패션스타일리스트 레베카 로이는 "영국의 주요 수출 산업인 패션을 부흥시키기 위해 서맨사는 미셸이나 카를라가 그랬던 것처럼 영국의 패션 아이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퍼스트레이디 효과'를 제대로 내려면

서맨사의 패션 전략은 '선배 영부인' 미셸이나 카를라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들 역시 자국의 디자이너 또는 자국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를 선택하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경제 위기에 명품 브랜드의 옷을 자주 입고 나오는데도 비난이 쏟아지지 않는 이유다. 뉴욕과 파리에서 럭셔리 패션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니콜 코모 씨는 "국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럭셔리 브랜드를 입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자국의 브랜드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다"고 말했다.

이들이 발휘하는 '패션의 힘'은 놀라울 정도다. 패션정보회사 PFIN의 이정민 이사는 "브루니가 입어 화제가 됐던 디오르 의상은 사실 바이어, 기자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던 것들이다. 그런데도 그가 입었다는 이유로 전 세계 매장에서 매진 현상을 빚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그가 특히 자주 입는 디오르 의상과 백, 쇼메의 목걸이 귀고리 등은 '프렌치 시크'를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전 세계적 인기를 누렸다.

재클린 케네디를 통해 이미 패션 외교의 힘을 경험한 미국에서는 미셸의 패션 하나 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이던 만모한 싱 인도 총리 부부가 백악관에 초대됐을 때 미셸은 인도 출신 디자이너 나임 칸이 디자인한 민소매 골드 드레스를 입었다.

대만 출신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원숄더 화이트 드레스. 미셸 오바마 여사가 지난해 1월 대통령 취임 축하 무도회 때 입었던 이 드레스를 올 3월 스미스소니언재단 산하 미국사박물관에 기증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대만 출신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원숄더 화이트 드레스. 미셸 오바마 여사가 지난해 1월 대통령 취임 축하 무도회 때 입었던 이 드레스를 올 3월 스미스소니언재단 산하 미국사박물관에 기증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외교적인 아름다움'으로 호평을 받은 이 드레스는 디자이너에게 명성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칸은 지난 달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경기가 좋지 않았던 지난해, 그 드레스 하나로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고 말했다. 칸은 미셸의 패션을 통해 얻은 명성으로 화장품 라인을 론칭하는가 하면 홈쇼핑 채널을 통해 30분 만에 2500벌의 드레스를 판매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지난해 1월 대통령 취임식 무도회 때 미셸이 입은 원숄더 화이트 드레스로 단숨에 벼락스타가 된 대만계 디자이너 제이슨 우는 '퍼스트레이디 효과'의 가장 큰 수혜자로 꼽힌다. 제이슨 우의 재무 담당 매니저는 "퍼스트레이디 홍보 효과로 매출이 40% 이상 성장했다"고 말했다.

미셸 오바마가 도나 캐런, 캘빈 클라인, 오스카 드 라렌타와 거물급 디자이너 대신 신인 디자이너들의 의상을 주로 선택한다는 것 역시 상대적으로 홍보비, 네트워크 등 자원이 부족한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이유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패션 정보지 우먼스웨어데일리는 지난 해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미셸이 입었던 태국출신 디자이너 타쿤의 꽃무늬 코트는 전 세계적인 광고 캠페인을 진행한 것 이상의 효과를 냈다면서 특히 경기에 민감한 패션산업이 글로벌 경제 위기 여파로 신음할 때 미셸의 패션은 확실한 힘이 됐다고 보도했다.

▶ '패션 코리아'… 우리는 안될까

미셸 오바마, 카를라 브루니에 이어 서맨사 캐머런까지 패션을 통한 '퍼스트레이디 외교'에 동참함으로써 정치인 아내들이 각국의 패션 산업과 국가 이미지 향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다면 심은하 패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은 한국에서도 유력 정치인의 아내가 패셔니스타로 떠오르는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을까.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의 스타일링을 맡았던 '퍼스널 이미지연구소' 강진주 소장은 "심은하 패션이 인기몰이를 한 것은 사람들이 그를 정치인의 아내보다 톱스타로 인식해 빚어진 현상일 뿐"이라며 "옷로비나 명품과 관련된 각종 부패 스캔들을 겪은 우리 국민은 여전히 정치인과 그 아내가 고급 브랜드를 입는데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한다.

한 정치 컨설턴트 역시 "아직 정치 선진국 국민들과 우리 국민 사이에는 정서적 온도 차이가 크다'며 "'김윤옥 에르메스백' '노무현 피아제 시계'가 크게 화제가 됐던 것처럼 '명품=사치'로 생각하는 우리 정서에는 특정 정치인이나 그 아내의 명품 패션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꼭 명품이 아니더라도 패션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 같은 인상만으로도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패션 전문가들은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홍익대 패션디자인학과 간호섭 교수는 "앞으로는 정치인 아내 특히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은 사치가 아닌 '패션 전도사'로 인식돼야 한다"며 "특히 '패션 코리아'를 내세우며 패션 산업을 국가적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들의 패션을 국가적 광고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대응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대중의 인식이 이미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PFIN 이정민 이사는 "패션 블로그를 통해 나타나는 대중의 인식 동향을 살펴보면 해외 정치인 부인의 패션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고, 우리도 이러한 패션 아이콘을 갖고 싶다는 의견 역시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패션 전문가들이 조언한 한국판 정치인 아내 패션 전략은 역시 국내 유명 브랜드를 활용하는 것. 이들은 김윤옥 여사가 2008년 4월 미국과 일본 순방길에 이광희, 진태옥 디자이너의 의상과 국내 브랜드 보티첼리, 타임을 입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우리도 과연 '패셔니스타' 퍼스트레이디를 가질 수 있을까. 강진주 소장은 "많은 한국인들의 '영부인상'은 여전히 육영수 여사의 한복에 맞춰져 있지만 이제 한국 현대 패션의 힘을 보여줄 때가 왔다"고 말한다. 자랑스러운 한복만큼 아름다운 우리 브랜드, 우리 디자이너의 의상이 '무형의 외교'로 결실을 맺는 날을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시기상조인걸까.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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