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대장정 기업환경을 바꾼다]<상>일대일 맞춤형 규제완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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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6일 03시 00분


“法개정 기다리다 기업 질식”… 4年 민원 즉각 “OK”
“현장 나가봐야 기업처지 이해”
시장나서 농지에 공장증설 허용
정부-지자체 시각차 등 암초
“선별구제 법일관성 잃어”지적

일러스트 김수진 기자
일러스트 김수진 기자
《22일 경기 고양시의 냉장기계 제조업체 세대산전 공장은 대형버스 2대를 나눠 타고 올라온 경북도 규제 담당 공무원 60여 명으로 북적댔다.
규제개혁의 모범 사례를 찾고 있던 이들은 세대산전 이홍근 사장(65)에게서 엉뚱한 규제로 겪은 고충과 규제 해결 과정을 직접 듣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 온 것. 이 사장은 공장 내에 새로 지은 가설 건물로 이들을 안내했다.
몇 달 전만해도 농지 규제에 묶여 건물을 지을 수 없던 곳이다. 그는 15년 동안 공장 마당으로 사용한 땅에 가설 건물을 세우기 위해 지난 4년간 겪은 우여곡절을 소상히 털어놨다.》
○공장용지 규제 푸는데 4년 걸려

이 사장은 2005년 공장을 확장하려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장 용지가 설비 증축이 되지 않는 농업진흥지역(농지)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 그는 규제를 풀기 위해 여러 차례 행정관청을 오가다 용도 변경이 행정착오였다는 사실을 지난해 밝혀냈다. 고양시는 이를 원상 복귀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건물을 지을 수 없는 농지로 남겼다.

그는 올해 3월 대한상공회의소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국경위)가 공동 운영하는 민관합동 규제개혁추진단(추진단)을 찾아 고충을 털어놓았다. 4년을 끌었던 이 문제는 국경위가 올해 7월 “불가피한 경우 농지에 공장 증설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즉시 해결됐다. 현장 공무원들이 움직이자 허가는 일주일 만에 났다. 강현석 고양시장은 시의 규제 담당자들을 모아 놓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테니 과감하게 규제를 풀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22일 경북도 규제 담당 공무원들이 정부의 규제개혁으로 공장을 확장한 경기 고양시 세대산전을 방문해 현장 답사를 하고 있다. 고양=박영대 기자
22일 경북도 규제 담당 공무원들이 정부의 규제개혁으로 공장을 확장한 경기 고양시 세대산전을 방문해 현장 답사를 하고 있다. 고양=박영대 기자

이 사장은 “대부분의 기업인은 농지 관련 규제로 골치를 썩는다”며 “현장 공무원들이 움직여 기업의 애로를 해결한 우리 회사의 사례가 많은 기업인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을 답사한 김완식 경북도 규제개혁 담당 사무관은 “현장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규제 완화의 필요성과 기업인의 처지를 알기 어렵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여전히 발 묶는 규제들

그러나 모든 기업의 문제가 이처럼 손쉽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정부가 작년 4월 추진단을 구성해 민관 합동 체제로 규제개혁에 의욕적으로 나섰지만 현장에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여전히 많다.

경기 화성시에서 압력용기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A사의 김창현(가명) 사장은 회사 옆 나지막한 야산만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태양광 발전기 생산라인 증가로 특수가스 압력용기 주문이 몰려 클린룸 생산설비를 새로 들이려 했지만 규제에 막혀 증설 기회를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동일지역 내 공장의 총량을 제한하는 ‘연접(連接) 개발 제한’에 묶여 투자를 1년째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규제 완화를 위해 2003년 이전 준공한 오래된 공장에 한해 증설을 일부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A사는 2006년 공장을 등록했다는 이유로 이에 해당되지 않았다. A사는 1998년에 지은 공장을 사들여 등록한 것이기 때문에 규제 완화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공무원들을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 사장은 “정부가 추가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고 하지만 투자 적기를 놓치면 소용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규제와 관련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다른 해석은 고스란히 기업의 피해로 돌아가고 있다. 경기도는 최근 녹내장 치료제 국산화에 성공해 850억 원을 투자하려는 용인시의 B사에 대해 폐수 배출시설 규제를 푸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관련 부처의 반대에 가로막혀 있다. 1977년 공장을 세운 이 회사는 2003년 제정된 국토법으로 증설이 제한돼 있다. 한연희 경기도 경쟁력강화 담당관은 “하수관을 통해 폐수를 상수원 보호구역 바깥으로 내보내면 국토법 대신 하수도법을 적용해 허가할 수 있다”며 “환경오염을 줄이며 투자를 늘리는 아이디어에 관련 부처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대한상의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이런 현장의 불만을 엿볼 수 있다. ‘규제개혁 체감도 조사’에서 ‘정부의 규제개혁에 만족한다’는 답변은 2004년 11월 9.1%에서 올 10월 38.9%로 5년 사이에 4.2배나 늘어났다. 정부의 규제개혁 노력에 대한 만족도(51.7%)가 높은 반면 법령 개정 등 후속조치(23.9%), 규제개혁 성과(25.2%), 공무원의 자세 변화(33.3%)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만족도가 낮은 점이 눈에 띈다. 정부의 규제 완화 의지는 인정하지만 기업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개별구제 제도 도입, 논란도 예상

정부가 규제 피해 개별구제를 검토하는 것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신성장산업실장은 “맞춤형 규제 개혁 방안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심의위원을 두는 등 운영의 기본원칙을 세운다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의 규제제도는 이렇게 해서라도 일정 부분 수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규제에 대한 선별적 구제는 법의 일관성과 형평성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형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실제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과 민원을 사안별로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며 “아이디어는 좋으나 시행이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경위 관계자는 “연구용역 결과가 나온 뒤 제도 도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고양·화성=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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