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수곤]‘건보 제한’ 풀어 관절 장애 막아야

  • 입력 2009년 5월 28일 02시 59분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 시기를 맞추면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시기를 늦추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시기가 잘 맞으면 대처하기 쉽지만 시기가 안 맞으면 대처하기 곤란할 수 있다. 인간의 질병에 있어서 진단과 치료의 적절한 시기는 소중한 목숨과 장애 여부를 판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대표적인 난치성 질환인 류머티스 관절염 역시 치료 시기가 중요한 질환임에도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해 후천적 장애인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류머티스 관절염은 우리나라에서 1% 정도인 50만 명이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환자의 70∼80%가 여성이어서 ‘여성의 질환’ 또는 ‘여성의 천형’이라 불리는 무서운 질환이다. 노인층에 주로 발병하는 퇴행성관절염과는 달리 젊은층에도 흔하게 발생한다. 문제는 진행 속도가 빨라서 증상 발견 후 2년 이내에 관절 파괴와 변형이 일어나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대한류마티스학회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류머티스 관절염 증상 발견 2년 이내의 초진 여성 환자 약 70%에서 관절 파괴 현상이 관찰됐다. 관절 파괴 현상은 질병이 이미 상당히 진행됐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관절 변형으로 인한 장애를 막으려면 신속한 치료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 기준은 신속한 치료를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 관절 변형을 효과적으로 막아준다고 알려진 생물학적 제제와 같은 신약을 사용하려면 제재가 따른다. 우선 생물학적 제제 사용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질환이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여야 하는데 판단하는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 일부 제한된 환자에게만 사용이 가능하다. 판단 기준에 부합하는 일부 환자 역시 기존 치료법으로 6개월 이상을 먼저 치료받아야 한다.

기존 치료법으로 효과를 본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환자의 경우 반년 이상을 허비한 후에야 비로소 신약을 사용할 기회를 얻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환자가 매우 심각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치료제라 하더라도 보험 규정으로 인해 때를 놓치고 질환이 심해진 후에야 생물학적 제제를 사용하게 될 경우 크게 효과를 보기 어렵다. 실제로 조기 치료를 적절한 수준에서 받지 못해 관절 변형을 겪는 안타까운 환자를 많이 접하게 된다.

게다가 신약 제제의 보험 적용 기간은 51개월로 정해져 있다. 세계적으로 비슷한 사례가 없는 제약이요, 규제다. 발병하면 평생을 꾸준히 관리하고 치료해야 하는 질환의 특성상 치료의 기한을 두는 규정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투약을 중단하면 병이 재발하기 십상인데 이는 보험급여 기간에만 치료받고 남은 기간에는 치료를 받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보험재정의 어려움을 감안해서인지는 몰라도 환자와 환자 가족이 이해하기 힘들다.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의 대부분은 여성 주부이다. 여성은 가족의 건강을 먼저 살피고 자신의 건강은 맨 마지막으로 미뤄 병이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에서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극심한 통증을 줄이기 위해 상당 시간을 민간요법에 매달려 허비하면서 병세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우도 흔하다. 경제적으로 치료비 부담이 큰 가정에서는 스스로 치료를 포기하려는 경우도 있다.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눈앞에 두고도 관절 변형으로 장애인이 돼 가는 모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여성 환자의 심정을 헤아려 주길 바란다.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환자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기다.

규정을 이유로 치료법을 막으려 하기보다는 규정을 계속 바꿔서 질병을 막으면 어떨까. 여성의 장애를 막을 수 있다면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건강보험 개선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수곤 연세대 의대 교수·대한류마티스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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