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선수 경험 일깨우고 독려…젊은선수들 태도까지 바꿔
7∼9번째 선수관리 중요…이들이 불평하면 팀 무너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운동선수에게 나이는 넘기 힘든 벽이다. 특히 배구 선수들의 생명은 유난히 짧다. 공중에서 움직이는 볼을 인체로 타격하고, 관절에 무리가 가는 점프를 한 후 착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른이 훌쩍 넘은 선수들을 데리고 프로배구 우승을 세 차례나 차지한 사람이 있다. 삼성화재 블루팡스 신치용 감독(54)이다.
신 감독은 슈퍼리그 8연패를 포함해 무려 11번의 우승컵을 들어올린 명장이다. 하지만 2008∼2009시즌이 개막할 무렵 삼성화재의 우승을 점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장병철, 석진욱, 최태웅, 신선호 등 핵심 선수들의 나이가 많은 데다 대부분 신장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1라운드에서 라이벌 팀에 잇달아 패했던 삼성화재는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며 2년 연속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신 감독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남들이 그 문제를 거론할 순 있어도, 우리가 나이를 들먹이면 변명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결과 화합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를 만든 게 우승 비결이라며 좋은 리더는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지도자론을 설파했다. 인터뷰 전문은 DBR 34호(6월 1일자)에 실린다.
―사회 전체가 젊은 사람들만 원합니다. 성적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감독으로서 노장 선수들을 어떻게 관리하셨나요.
“지도자는 선수의 단점보다 장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많은 나이는 풍부한 경험을, 작은 키는 유연성과 순발력을 의미합니다. 비슷한 실력인데도 젊은 선수를 기용하면 고참들이 ‘나보고 나가라는 의미인가’라며 동요합니다. 결국 팀플레이에 악영향을 미치죠. 노장들에게 늘 강조합니다. ‘이제 와서 너희들의 실력이 늘겠냐, 없던 체력이 생겨나겠냐. 펄펄 날기를 기대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노력도 해보기 전에 나이 많다고 변명하지 말자. 배구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우리가 마음을 모아 못할 일이 뭐가 있겠냐’라고요.
선배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 젊은 선수들의 태도도 달라져요. ‘나도 열심히 운동만 하면 나이 많다고 함부로 내쳐지는 신세가 되진 않겠구나. 나이 많은 선배들도 저렇게 열심히 운동하는데, 젊은 내가 힘든 티를 내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하죠. 다른 팀에 가면 코치를 하고도 남을 선수들이 주전으로 뛰니 후배들은 다른 팀보다 2배 많은 조언자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 효과가 절로 생겨납니다.”
―반대로 젊은 선수들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텐데요.
“주전으로 뛰는 6명은 사실 관리할 필요가 없어요. 문제는 7∼9번째에 있는 선수들이죠. 상황에 따라 뛸 수도, 안 뛸 수도 있는 이 선수들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정말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이 선수들의 말과 불평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그 팀은 무너집니다. 그런 분란을 없애려면 주전 선수들이 ‘다년간의 경험이 모이면 패기를 능가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몸소 보여 줘야 합니다.
우리 선수들은 시합이나 연습 도중 지칠 대로 지쳐도 감독이나 코치들에게 휴식을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습니다. 감독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동료들의 눈치가 보여 쉴 수 없다는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더 열심히 운동하는 동료도 쉬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먼저 쉴 수가 있겠냐’고 선수들 스스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것이 선수단 전체로 퍼져 나가 단합을 이루고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런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겁니다. 감독이나 선수가 아니라 조직 문화에 의해 움직이는 팀이 가장 강한 팀입니다. 감독이 모든 선수들의 움직임과 상황을 일일이 체크할 수는 없어요. 선수들의 정신을 바꿔놓으면 그 다음에는 자기들이 알아서 따라옵니다.”
―선수들의 마음가짐이나 조직 문화의 중요성을 유달리 강조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무임승차입니다. 사회 조직에서는 그 직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팀 스포츠에서는 그 선수만이 소화할 수 있는 포지션이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그 자리를 얻는 주전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렇다고 비(非)주전 선수의 인생을 낭비하게 만들 순 없잖습니까. 이들에게도 고유의 역할과 임무를 부여해 주고 자긍심을 심어 줘야 합니다.
제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우리 팀의 문화는 훈련할 때 선수나 스태프 중 노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입니다. 훈련에 참가하지 못하면 걸레라도 들고 서 있든지 응원단장 노릇이라도 하라고 강조합니다. ‘네가 지금 우리 팀에서 하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으면 당장 팀을 떠나거나 네 스스로 일을 찾아라. 청소를 하든, 운전을 하든 어떤 식으로라도 팀에 기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뽑은 올해 우승의 주역은 고희진 선수입니다. 제일 열심히 동료들을 격려하고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자신을 희생한 거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조직은 발전합니다.”
―지략이 뛰어나시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TV 중계가 뜨면 마이크 앞에서는 속공을 지시하면서도 세터에게 귓속말로 후위 공격을 시키신 것도 유명하죠.
“내가 저 팀 감독이면, 내가 저 선수라면 어떻게 행동할까를 늘 연구합니다. 바둑을 둘 때 몇 수 앞을 예측하듯 ‘저쪽에서 A를 선택하면 저는 B를 선택하고, 다시 C로 나오면 또 D로 대응하는 식’이죠. 남을 따라다니면 늘 2등밖에 못하니 남을 앞서가야 합니다. 상대 팀이 경기 후 인터뷰하는 모습만 봐도 그 감독의 습관과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몇 수 앞이 아니라 백 수, 천 수 앞의 움직임도 예측할 수 있어요. 전술 개발도 절로 되고요. 그런 식의 작전 지시가 맞아떨어졌을 때 느끼는 희열은 말로 표현 못합니다. 선수들이 감독을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집니다. ‘저 감독은 내가 신뢰할 만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구나’라고요.
선수들과 함께 복기(復棋)하는 일도 즐깁니다. 단 이겼을 때만 해요. 진 경기를 복기하는 일은 선수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죠. 이긴 경기를 복기해야 ‘오늘 참 좋았는데 이 점만 추가하면 되겠다’라고 선수들에게 자연스레 주문할 수 있습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신치용 감독은
1955년 경남 거제 출생으로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80년 한국전력 배구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 삼성화재 창단 때부터 현재까지 팀을 이끌며 슈퍼리그 우승 8회, 프로 출범 후 3회 우승을 차지했다. 차녀 혜인 씨는 한때 ‘얼짱 농구선수’로 유명했던 스타다.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34호(2009년 6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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