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빨대

  • 입력 2009년 5월 12일 02시 58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씨에게서 회갑 선물로 1억 원짜리 스위스 명품시계 ‘피아제’ 두 개를 받았다는 사실이 처음 보도됐을 때 노 씨 측은 “검찰이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고 의도적으로 흘렸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검찰은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기자들에게 “빨대를 색출하겠다”며 발끈했다. 600만 달러 수수 혐의를 부인하면 ‘비장의 무기’로 쓰려 했는데 빨대가 선수 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빨대를 ‘물 따위를 빨아올리는 데 쓰는 가는 대’라고 정의하고 영어의 ‘스트로(straw)’와 비슷한 말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전남 지방에서는 ‘담뱃대’를 빨대라고 한다. 수사기관에서 빨대를 언론에 비밀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을 뜻하는 은어로 쓰는 것은 음료수가 빨대를 통해 밖으로 나가듯 정보가 새나가는 통로라는 의미인 것 같다. 홍 기획관은 “만약 검찰이 흘렸다면 해당자는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사람이며 나쁜 빨대”라고 말했다.

▷지난 주말에는 대검 중앙수사부에 빨강 노랑 녹색 등 색색의 빨대가 가득 든 상자가 배달돼 검찰을 어리둥절케 했다. ‘고생 많으십니다. 수사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란 쪽지가 들어있었다. 검찰은 빨대 선물을 ‘격려’로 받아들여 “수사팀이 음료수를 먹는 데 잘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혹시 ‘검찰에 빨대가 왜 그렇게 많으냐’ 또는 ‘색출 소동을 벌인다고 빨대가 없어지겠느냐’는 조롱의 뜻은 아닌지 모르겠다.

▷미국 언론은 비밀스러운 취재원을 ‘딥 스로트(deep throat)’라고 부른다.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1972년)에 관한 책을 펴내면서 비밀정보를 제공한 취재원을 딥 스로트라고 처음 불렀다. 딥 스로트는 33년 뒤인 2005년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으로 밝혀졌다. 기자는 펠트가 고백할 때까지 비밀을 지켰다. 기자들은 검찰과 달리 빨대가 많을수록 좋다. 큰 사건 수사가 진행되면 공식 발표만으로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충분히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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