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무관심이 삼킨 열일곱살 소녀

  • 입력 2009년 3월 24일 03시 05분


가출 10대 살해 충격현장

몇달동안 남녀 5명이 혼숙

이웃 어른-부모도 안돌봐

10대 4명이 같이 살던 지적장애인 유모 양(17)을 때려 숨지게 한 끔찍한 현장,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의 한 다세대주택.

22일 이곳을 찾았을 때 싱크대에는 며칠 동안 그냥 놔둔 듯 지저분한 그릇들로 가득했고 이불과 옷은 한참을 빨지 않아 퀴퀴한 냄새를 내뿜고 있었다.

이 집에는 어른 없이 10대 5명만 생활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가해자 중 한 명인 강모 씨(19)의 부모. 강 씨의 어머니는 남편이 죽자 딸만 데리고 집을 나갔다. 이후 강 씨는 여기서 혼자 생활했고 친구 이 모(19), 김모 씨(19), 김 씨의 여동생(17)이 들어와 함께 살았다. 올해 1월부터는 채팅으로 만난 피해자 유 양까지 집에 들어왔다.

몇 달 동안 이렇게 살았지만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어른은 없었다.

강 씨의 어머니는 불과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살면서도 이들의 비행을 애써 막지 않았다. 유 양이 숨지기 3일 전인 15일 이 집을 찾았지만 밀린 공과금 고지서와 어지러운 집 상태를 보고 “나가라”고 요구한 것이 전부였다.

이곳에서 유 양이 감금당한 채 끔찍한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 채지도 못했다.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유 양도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유 양이 다섯 살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져 고향인 제주로 떠났다. 유 양의 아버지가 혼자 돌봐왔지만 최근 대출 보증을 섰다가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이마저도 소홀했다. 유 양이 가출한 뒤에도 딸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14일엔 유 양이 아버지 앞에 나타났다. 장애수당 수급 자격을 갱신하기 위해서였다. 유 양의 아버지는 동행한 이 씨 등이 “딸을 잘 데리고 있다”며 식당 주인 행세를 한 것을 의심하긴 했지만 딸을 그대로 보냈다. 경찰에는 신고도 하지 않았다. 유 양의 여동생도 부모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출해 성매매와 절도 등을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번 사건을 조사한 중원경찰서 관계자는 “유 양 자매는 아버지의 무관심이 싫어 가출과 귀가를 반복했고 그러다 보니 아버지도 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성남=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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