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용하]‘따뜻하고 촘촘한 복지’의 첫걸음

  • 입력 2009년 3월 23일 02시 56분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국내 경기침체로 고용과 소득이 감소하고 있다. 서민 취약계층이 몰려 있는 임시 일용직 일자리가 크게 감소하고 영세영업자의 폐업이 빠르게 증가한다. 중간층 가계도 주름살이 늘어나는 실정이다. 이번 경제위기는 경기순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기 후퇴나 10년 전 외환위기와는 다른 현상을 보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막연한 불안감이 확산된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는 중이고 우리 정부도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을 비롯해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6조 원이 넘는 규모의 민생안정 긴급지원대책을 발표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및 긴급복지수급자 확대에 4510억 원, 한시적 생계구호에 5385억 원, 희망근로프로젝트에 2조6000억 원, 자산담보부 생활지원제도에 1300억 원 등이 골자다. 기존의 사회안전망 내에서 늘어나는 빈곤층을 위한 생계비 지원 예산 확보 외에도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 상태임에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했던 100만 명과 재산기준을 초과한 182만 명 중 근로무능력자를 위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식품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하는 한시적 생계구호 대책을, 근로능력이 있는 비수급 빈곤층을 위해서는 과거 공공근로적 성격을 가진 일자리 대책을 세웠다는 점이 특징이다. 실직 상태에 있지만 사회보험 혜택도 받기 어렵고 재산 기준으로 생계지원도 받기 어려운 계층을 위한 저리융자제도도 포함되어 있다.

이번 민생안정대책은 일단 6조 원이라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다는 점에서 파격적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대책과 다르게 다양한 계층의 복지 욕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따뜻하고 촘촘한 복지’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특히 시혜적 복지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을 사전에 차단하면서 현금 현물 일자리를 균형 있게 배열한 점도 인상적이다.

대책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국회라는 관문을 거쳐야 하겠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이들 대책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 면밀한 세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제도 혹은 정책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고 중복성이 없어야 한다. 특히 쟁점이 될 수 있는 희망근로프로젝트의 경우 지급 방식에 있어서 현금과 소비쿠폰을 절반씩 지급한다고 되어 있지만 소비쿠폰의 장단점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존의 사회서비스나 자활후견기관이 제공하는 일자리와의 차별화와 동시에 형평성 유지가 필요하다.

또 새로 만든 일자리가 과거 공공근로같이 비생산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적정한 사업비 예산을 부가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고 이때, 인적자원의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과 훈련비용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들 예산이 누수 없이 필요한 사람에게 온전히 전달될 것인지 국민이 우려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관리체계도 재정비해야 한다. 경기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경우도 감안해 대책의 완급을 조절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가져야 하고 경제가 회복된 뒤에는 빈부격차와 계층 간 갈등이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체계적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 연설에서 “우리는 다음 네 가지 기본적 자유 위에 세워진 세계를 갈망한다. 첫째, 세계 각지에서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이다. 둘째, 세계 각지에서의 신앙의 자유이다. 셋째, 세계 각지에서의 결핍에서의 자유이다. 넷째, 세계 도처에서의 공포에서의 자유이다”라면서 대공황에 지친 미국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번 정부 대책이 이들 네 가지 자유 중 ‘결핍에서의 자유’와 ‘공포에서의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자 발화점이 되기를 바란다.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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