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반병희]믿음, 희망의 미학

  • 입력 2009년 1월 5일 02시 57분


현명한 부모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심지어 단점마저 장점으로 느끼도록 유도한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 어려서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당연히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네 머리가 너무 좋아 혀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 뿐 너는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격려했다. 그는 진심으로 이 말을 믿었다. 그리고 이런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은 그대로 실현됐다.

‘믿는 만큼 이뤄진다’는 경구를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는 강력한 근거를 갖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 헝가리 부대는 알프스산맥에서 길을 잃었다. 모두가 혹독한 추위와 폭설로 절망에 빠졌다. 다행히 한 병사가 배낭에서 구겨진 지도를 발견해 알프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 지도는 알프스가 아닌 피레네산맥 지도였다. 엉뚱한 지도가 부대원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생명을 살린 것이다.

외환위기를 결정적 도약의 계기로 삼았던 한 중견그룹 총수의 사례도 자기 충족적 예언의 위력을 보여준다. 외환위기로 자금줄이 막히자 그룹의 주력회사 사장이 갑자기 사표를 냈다.

할 수 없이 그룹 총수가 직접 계열사 사장직을 맡았다. 직원들은 동요했다. 회장이 직접 나서 칼을 댈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회장은 “결코 구조조정은 없다. 우리는 반드시 살아난다”고 거듭 밝혔다. 물론 본인도 뚜렷한 대책은 없었다. 하지만 몇 달간 줄기차게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자 직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장에게 뭔가 비책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직원들은 자신감을 회복했고 이 기업은 급기야 40대 그룹으로 급성장했다.

과학적으로도 피그말리온 효과를 입증하는 실험 결과가 1968년 이후 꾸준히 발표됐다. 하버드대 로버트 로젠탈 교수 연구팀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 초등학교에서 전교생 대상의 지능검사를 실시했다. 이후 연구팀은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일부 학생을 무작위로 선정해 이들을 “지적으로 뛰어난 학생들”이라고 공개했다. 8개월 후 지능검사를 다시 실시했는데 이 명단에 속한 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높게 나왔다. 이후 군인, 사관생도, 기술자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긍정적 믿음이 성과 향상에 실질적 기여를 한 것이다.

이런 인과관계를 입증할 만한 충분한 논리적 근거도 있다. 만약 간부가 부하 직원에 대한 긍정적 믿음을 갖고 있다면 더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환경에서 부하 직원들은 더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할 것이다. 게다가 일정 성과가 나오면 리더의 믿음은 더더욱 강해진다. 성공을 경험한 직원들도 목표 달성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반대 논리도 성립한다.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면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고 직원들도 의욕을 잃는다. 성과는 나빠지고 부정적 인식이 더 확산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지금처럼 미래가 불투명하고 어려움이 계속돼도 리더는 희망을 얘기해야 한다. 그것도 직원들이 믿을 때까지 계속…. 모두가 미래에 대한 긍정적 믿음을 갖는 순간 한국의 경제위기는 곧바로 끝난다.

반병희 산업부장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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