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前官예우에 무릎 꿇은 司法정의

  • 입력 2008년 10월 21일 02시 59분


고위법관 출신 변호사에 대한 법원의 전관예우는 사법부의 풍토병처럼 돼버려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에 형사사건을 많이 맡은 1∼20위의 변호사 중 17명이 최종 근무지에서 개업했다. 참여연대 조사에서도 2004∼2007년 퇴임한 지방법원장 및 고등법원장 출신 20명이 퇴임 1년이 안 된 지역에서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6∼8월 판결문을 통해 확인된 것만도 법원장 출신이 맡은 사건은 210건이었고, 이 중 73.8%가 형사사건이었다.

법원장들이 퇴직하자마자 사건을 들고 오면 법관들이 얼마 전까지 ‘모시던 분’에 대해 소홀히 하기 어려워진다. 주로 사인(私人) 간의 다툼인 민사사건에 비해 형사사건은 원고가 국가(검찰이 대행)이기 때문에 형량을 낮춰주기가 쉽다. 그래서 돈을 더 주고라도 전관예우가 가능한 고위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면 피고인은 솜방망이 처벌로 끝날 수 있게 된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속설이 여전히 범죄세계의 ‘진리’로 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간 인사들도 포함해 작년에 발족한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올해 7월 범죄를 유형별로 구분한 뒤 세분된 형량범위를 제시하는 방식의 ‘한국형 양형기준제’를 마련했다. 재판부에 따라 들쭉날쭉한 ‘고무줄 판결’을 줄여 사법부 불신을 없애려는 노력이다. 세부적인 기준을 일일이 점수로 환산해 적용하면 법관의 자의적인 양형(量刑)이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각양각색인 피고인별 범죄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맹점도 있다.

전관예우는 선후배의 연(緣)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변호사, 퇴직한 선배의 노후 챙겨주기에 충실한 법관, 정의를 돈으로 사려는 부유층이 3박자를 이루는 고질적인 병폐다. 전관예우가 이 정도로 사법정의를 왜곡하기에 이르렀다면 최종 근무지에서 변호사 개업을 일정기간 금지하는 개업지 제한 제도를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법관 스스로 사사로운 인연보다 법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솔선수범)를 실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