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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8일 1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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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힘이 너무 세거나 국회 운영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그 둘 모두가 원인일 수 있다. 제도적으로 보면 국회는 확실히 강력하다. 1987년 민주화운동의 결과다. 개헌으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장치를 여럿 만든 데다 지난 20년간 법 개정을 통해서도 행정권력을 통제하는 보조 장치들을 숱하게 마련했다. 광우병 파동을 구실로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하면서 행정부의 고유 권한이던 수입위생조건 고시에 ‘국회 심의’ 장치를 둔 것도 그중 하나다.
사실 입법권과 예산안심의권만으로도 국회는 행정부를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다. 이것도 모자라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국정감사를 실시하고 필요하면 국정조사도 한다. 조약 비준 등 주요 사안의 처리와 국무총리 임명, 정부조직 개편은 국회 동의가 필수이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등을 마음대로 부르고, 해임을 건의할 수도 있다. 대통령 탄핵도 가능하다. 국무위원과 권력기관장들의 임명 때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자기 방어를 위한 안전장치도 한둘이 아니다. 이번에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십분 활용한 회기 중 의원 불체포특권과 의원 면책특권이 대표적이다. 국회의원을 제명하려면 대통령 탄핵 때와 같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지방단체장과 의원들에게는 가능한 주민소환제가 국회의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비하면 행정부가 국회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는 빈약하다. 믿기지 않겠지만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 고작이다. 민주화세력은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박탈해 박물관으로 보내버렸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얼마 전 “현행 헌법은 21세기에 나타난 지방화 정보화 세계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권력구조는 삼권분립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장까지도 의회 권력의 지나친 비대화를 걱정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나마 국회 운영이라도 합리적으로 이뤄진다면 ‘실질적인’ 삼권분립이 가능하겠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정치의 기본인 대화와 타협,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다수결 원칙은 실종되다시피 했다. 과거와 달리 개별 의원에 대한 정당 차원의 통제도 어렵다. 중재 역할을 해야 할 국회의장은 국회법상 여야 원내대표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정당과 의원들은 편리한 대로 법을 해석하거나 어기기 일쑤다. 가히 ‘브레이크 없는 국회’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행정부가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던 과거 권위주의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의회 독주가 민주화의 산물이라면, 선진화를 지향하는 지금은 달라져야 한다. 제도든 운영이든 시대의 변화에 맞아야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국회의 자기절제(自己節制), 곧 선진화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