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公의 방만’ 방치하곤 국민 고통분담 요구 못한다

  • 입력 2008년 10월 8일 02시 49분


공기업 개혁은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핵심 과제이지만 이 정부 들어서도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낭비적 요소는 좀처럼 줄어들 줄 모른다. 정부가 개혁 엄포만 놓을 뿐 정작 실행단계에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공기업 경영진과 노조 간의 뿌리 깊은 담합이 오히려 되살아나는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한국전력과 6개 발전 자회사, 석유공사, 광업진흥공사, KOTRA 등 30개 공기업의 사장과 감사들이 해외출장을 다니면서 항공기 일등석을 이용한 것은 국민 혈세를 흥청망청 써대는 공기업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한 단면이다.

한전은 뒷전에서 이렇게 예산을 낭비하면서도 “국제유가 상승으로 적자가 쌓여 정부가 보조금을 주지 않으면 전기요금을 2.7% 올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 추가경정 예산에서 6680억 원을 배정받았다. 한전 말고도 해외출장 준비금을 대통령보다 3배나 더 쓴 공기업 임원도 상당수다. 한 해 수조 원의 이익을 내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임원들은 해외출장을 다닐 때 대부분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한다. 민간기업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 적자투성이의 공기업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정부의 예산 누수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정치권의 방만성 역시 만만찮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정치권, 공기업의 3대 축이 형성하고 있는 ‘방만의 공생 트라이앵글’을 바로잡지 못하면 재정 건전성과 국정 운영의 효율성은 멀어진다. 자기들끼리는 서로 눈감아주면서 기업 가계 등 민간 경제주체에게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고통을 분담하자고 어떻게 호소할 수 있겠는가.

예산의 오남용과 낭비를 줄이면 ‘예산 10% 절감’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 재정을 튼튼히 하고 우리 경제의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높이는 투자에 쓰면 경제체질이 강화돼 외부 악재에 대한 내성(耐性)도 키울 수 있다.

정부는 어제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공기업을 포함해 공공 부문의 모럴해저드를 근본적으로 수술할 마스터플랜을 내놓는다면 위기 극복의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정부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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