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김정일 이후’ 판독법

  • 입력 2008년 9월 29일 20시 08분


여느 독재자들처럼 김정일(66) 국방위원장도 건강에 무척 신경을 쓴다고 한다. 자신이 먹는 식품을 연구하기 위해서 ‘기초과학원’이라는 연구소까지 설립했을 정도라는 것이다. 북한 각 지역의 특산품은 ‘1호식품’으로 분류돼 특별관리된다고 한다. 함경남도 금야군의 쌀, 황해남도 배천군의 야채와 과일, 강원도 통천군 앞바다에서 잡은 도미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특각(特閣)으로 불리는 전용별장도 생체리듬에 가장 좋다는 해발 500m의 경승지만 골라서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권력자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섭리는 피해갈 수 없는 법이다.

‘김정일 이후’는 그의 유고(有故)가 언제 어떤 형태로 오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건강에 이상이 있으나 병상(病床) 통치가 가능한 정도라면 급변사태의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가 병상에서 후계체제 구축작업을 관리할 수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언어 구사와 사고 활동에 지장이 없다”는 중국 당국자의 전언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 경우엔 3대에 걸친 세습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것이다. 김정일도 아버지 김일성처럼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다. 그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닌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김정일 유고 때는 “장남인 정남(37)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중국이 오래전부터 김정남을 관리해 왔고, 김정일의 매제로 실세인 장성택(노동당 행정부장)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절충형 세습체제’ 가능성 높아

다만, 지금은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와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당시 김정일은 이미 인민군최고사령관에 국방위원장으로서 북한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 따라서 정남, 정철(27) 정운(25) 세 아들 중 한 사람이 후계자로 옹립되고, 당 정 군의 원로와 핵심 간부들이 그를 후견하는 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 ‘절충형 세습체제’라고나 할까.

‘절충’의 고리는 권력이 될 것이다. 절대 권력자의 유고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분산을 수반한다. 후계자는 혁명가(革命家)로서의 적통을 이어받은 데 대한 대가(代價)로 권력을 나눠줄 수밖에 없다. 과거 김일성 김정일 아래에선 ‘일신의 안락’만 보장해주면 됐으나 그만한 카리스마와 경륜이 없는 지도자는 줄 게 권력뿐이다. 그래서 새 체제는 ‘상징적 수령체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후계체제는 순항할 것인가. 1989년 무너진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이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당시 정권 유지의 세 기둥이었던 당과 군(정규군), 그리고 세쿠리타테(보안군) 중 가장 먼저 등을 돌린 것은 군이었다. 민중 봉기가 일어나자 상당수 고위 장성과 장병들은 곧 이에 동조했던 것이다. 당의 경우 하부조직은 분열됐지만 고위간부들은 마지막까지 체제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보안군은 정권이 붕괴된 후에도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북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우리가 ‘김정일 이후’에 대비하면서 북한의 군과 노동당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할 이유다.

김정일 유고로 인한 대량 난민 발생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베트남을 전례로 들지만 1975년 베트남 패망 당시 100만 명이 넘는 보트 피플이 바다로 몰려나온 것은 베트남이 공산화됐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 살다가 공산화됐으니 앞날이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겠는가. 하지만 북한은 사정이 다르다. “10만 명 이상의 북한판 보트 피플이 일본으로 밀려올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가정은 또 어떤가. 북한을 탈출하려면 탈북자들에 의해 이미 루트가 형성돼 있는 북중(北中) 국경을 이용하지 굳이 바다로까지 나가겠는가.

‘나쁜 통일’, ‘좋은 분단’보다 나은가

일본이 기회만 있으면 ‘대량 난민’ 운운하는 것은 ‘김정일 이후’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명분과 구실을 축적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든 어설픈 개입은 금물이다. 김정일의 유고는 민족문제이기에 앞서 전후(戰後) 60년이 넘게 유지돼 온 동북아의 현상유지체제를 흔들 수도 있는 국제문제다. 그래서, “북한 주민의 호감을 얻어야 상황을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는 주장도, “어느 때보다 통일이 가시권에 들어왔다”(서재진 통일연구원장)는 예단도 다 걱정스럽다. 지금은 차분하게 ‘나쁜 통일’이 과연 ‘좋은 분단’보다 나은 것인지부터 따져볼 때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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