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뛰는 지방자치]<11>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제주

  • 입력 2008년 9월 16일 03시 08분


작년 6월 등재… BBC등 해외언론 앞다퉈 취재

만장굴 외국인 관광객 올 8월까지 작년의 4배

道, 주변 사유지 매입… 보전 관리도 본격 나서

《‘푸드득.’ 정적을 깨는 이방인의 발자국 소리에 박쥐가 놀라 잠에서 깼다. 10일 오후 세계자연유산의 하나로 등재된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만장굴의 미공개 구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동굴 내부 모습이 불빛에 들어왔다. 용암이 흘러내리며 신이 빚은 듯 여러 조각품을 만들었다. 새끼줄이 꼬인 듯한 승상용암, 동굴 중간에 만들어진 용암다리, 물이 흐른 듯한 용암유선이 잘 발달됐다. 벽면에는 박테리아가 붙어 마치 은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했다. 10만∼30만 년 전 형성된 용암동굴이라기보다 마치 2000∼3000년 전 용암이 흐른 것처럼 ‘젊고 싱싱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만장굴은 총길이 7416m, 최대 폭 23m, 최대 높이 30m.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

만장굴 입구에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 마스다 마스미(增田眞澄·64·여) 씨는 “일본에서 이처럼 거대한 동굴을 본 적이 없다”며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연유산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 제주의 새로운 대표 상징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에 등재된 국내 유산은 모두 8건.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 해인사 장경판전 등 7건이 문화유산이고 자연유산은 제주가 유일하다.

자연유산은 세계에서 유일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해 그만큼 등재되기까지 심사가 까다롭다.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은 우리나라를 대표해 2007년 6월 27일 세계자연유산 등재라는 역사적 성과를 얻어냈다.

세계자연유산 지구는 한라산,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일출봉, 제주시 구좌·조천읍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로 나뉜다(위치도 참조). 면적은 188.4km²로 제주도 전체 1848.4km²의 10.2%.

한라산은 산꼭대기 화구호인 백록담, 가파른 기암절벽, 용암이 급속히 흐르며 형성된 주상절리 등 성질이 각각 다른 용암으로 이뤄졌다.

성산일출봉은 수심이 낮은 해저에서 화산 분출로 만들어진 화산. 수성(水成) 화산의 ‘교과서’로 불린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천연 동굴의 백미. 기생(寄生)화산인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흐르면서 만장굴, 김녕굴, 벵뒤굴, 당처물동굴, 용천동굴을 만들었다.

자연유산 전문가 자문그룹인 세계자연보존연맹(IUCN) 폴 딩월 상임고문은 지난해 9월 제주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나타난 다양한 석회성질 생성물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고 감탄했다.

○ 관광객 늘고 해외에서도 관심

제주는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이뤄진 뒤 국내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자연유산 등재 1년을 맞아 최근 영국 BBC, 일본 NHK, 중국 CCTV 등 해외 유명 방송사가 앞 다퉈 제주를 집중 조명했다.

올해 8월 말까지 한라산 탐방객은 61만3450명, 만장굴은 36만419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6.7%, 25.2% 증가했다. 성산일출봉은 17.2% 증가했다.

만장굴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8607명에서 올해 3만6499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세계자연유산 등재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세계자연유산을 체험하는 거문오름 트레킹 코스는 7월 초 개방 이후 하루 평균 277명의 탐방객이 다녀갔다.

제주도는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국제회의 유치, 청정 농수축산물 판매에도 도움을 주는 등 제주산업 전반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세계자연유산 등재는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면 목록에서 삭제되기 때문에 보전과 관리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제주도는 우선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사유지 매입 작업에 나섰다. 농경지로 쓰이면 농약 등으로 동굴계가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내년 말까지 275필지 138만3556m²를 사들일 계획이다.

세계자연유산 관리를 위해 300억 원을 투자해 2012년까지 ‘세계자연유산센터’도 짓는다. 이 센터는 아시아지역 세계자연유산 네트워크의 심장부로 만들어진다. 미공개 동굴을 체험할 수 있는 가상공간도 이곳에 들어선다.

또 용암동굴 내부 환경변화, 유산지구의 동식물 현황, 적정 탐방 인원 등에 대한 학술조사가 연차적으로 진행된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호수 낀 용천동굴, 자연유산 등재 ‘1등 공신’▼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서 용천동굴은 국내외 동굴전문가 등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용천동굴은 2005년 5월 전신주 공사를 하는 도중 발견됐다. 이 동굴이 없었다면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용천동굴은 용암동굴이면서 석회동굴 성격을 띠는 ‘석회장식 용암동굴’. 길이 2470m, 최대 폭 15m, 최대 높이 20m.

용천동굴 생성은 10만∼30만 년, 석회생성물은 2600여 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 가까운 막장에는 길이 200m, 수심 6∼15m, 폭 7∼15m의 호수가 있다. 용암동굴에 호수가 형성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

동굴에는 자연이 만든 생성물 외에도 도기, 숯, 동물 뼈, 돌탑, 전복 껍데기 등이 발견됐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역력하다. 언제 어떤 경로로 사람이 오갔는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용천동굴이 ‘형’이라면 인근 당처물동굴은 ‘아우’에 해당한다.

1995년 발견된 당처물동굴 길이는 100m에 불과하지만 동굴생성물 박물관을 연상시킬 정도로 석회 생성물이 다양하게 발달했다. 종유석, 종유관, 석순, 석주 등이 좁은 공간에 밀집된 특징을 보인다.

아쉽게도 이들 동굴은 일반인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흙, 세균, 조명 등이 유입될 경우 지금도 변화를 계속하고 있는 동굴 내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하롱베이 훼손 주시… 보전 없인 관광도 없어”▼

오승익 세계유산관리본부장

제주도는 세계자연유산의 효율적인 관리와 활용을 위해 3월 직제를 개편하고 세계유산관리본부를 만들었다.

오승익(사진) 세계유산관리본부장은 “민관, 학계, 환경단체가 모두 힘을 합쳐 각고의 노력으로 세계자연유산 등재라는 결과물을 얻어냈다”며 “겨우 뿌리를 내렸을 뿐, ‘관광소득’이라는 열매를 따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오 본부장은 베트남 하롱베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하롱베이는 1994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관광객이 1996년 23만 명에서 2000년 85만 명, 2005년 150만 명으로 급증하면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했다.

하롱베이는 지역소득이 늘었지만 관광객 급증으로 석회암 기암괴석 등 곳곳에서 훼손이 발생했다. 관리정책은 미흡한 채 무분별한 개발이 지속되는 등 환경 파괴 지적을 받고 있다.

오 본부장은 “보전, 관리정책이 선행되지 않은 관광객 유치는 제주 세계자연유산 활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내년까지 대륙별로 세계자연유산 지구와 자매결연을 추진해 보전과 활용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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