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훈]촛불에 녹아내린 공권력

  • 입력 2008년 6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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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2월 16일 동아일보 광고국에 전화가 걸려 왔다. 오랫동안 거래해 온 A기업 임원의 전화였다. 잠시 머뭇거리다 “광고를 해약해야 할 사정이 생겼다”고만 말했다. 뚜렷한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그의 전화 통고 이후 광고 해약 사태가 줄을 이었다. 결국 열흘 뒤 동아일보 4, 5면 하단 광고란은 텅 빈 백지로 나갔다. 세계 언론사에 유례가 없는 ‘광고 탄압’이 시작된 것이다. 탄압의 배후에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던 중앙정보부의 그림자가 뚜렷하게 어른거렸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 몇 년 더 흘렀다.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만 5명이 나왔다. 그런데도 ‘광고 탄압’을 빼닮은 폭거가 다시 자행될 것으로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첫 촛불집회가 열린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먼저 MBC ‘PD수첩’이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3대 신문의 논조를 비난하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 다음 아고라에 3대 신문에 광고를 한 기업들의 전화번호와 구체적인 행동지침들이 뜨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법망을 피할 수 있다’, ‘불매운동을 거론하면 효과가 크다’는 식이었다. ‘아고라의 돌격명령’에 따라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 전화부대의 협박 공세와 기업체 홈페이지 공격이 착착 전개됐다. 개중에는 도를 넘어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이 가능해 보이는 사례들도 있었다. 여기에 규모가 작은 일부 기업은 손을 들고 말았다.

주체만 달라졌을 뿐 광고 탄압의 양태는 33년여 전과 흡사한 점이 많다. 유신독재 시절에는 최고 권력자의 의중을 읽은 ‘정보기관’이 나섰다면, 지금은 일부 반정부 좌파세력과 상업적인 인터넷 권력이 호흡을 맞추고 일부 누리꾼이 가세한 듯한 양상이 차이라면 차이다.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다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광고주를 협박하고 업무를 방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검찰과 경찰은 아무 말이 없다. 유신 때야 서슬 퍼런 핵심 권력기관이 어른거리는데 검경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겠지만. 혹시 촛불의 열기에 나라의 질서를 잡아야 할 공권력까지 흐물흐물 녹아내린 것은 아닐까.

서울광장에서 집회만 끝나면 도심의 간선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여 교통을 마비시키는 일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도 경찰은 손을 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 경찰청장은 촛불집회 초기에 야간집회는 불법이라고 엄포를 놓더니 얼마 전에는 야간집회도 제한된 범위에서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불법시위를 막아야 할 일선 경찰만 야유와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다. 공권력 전체에 위엄과 체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화물연대 파업이 한창이던 16일 물류관계 장관들이 담화문을 내고 “불법파업을 계속하면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발표하는 장면을 TV로 봤다. 나라의 법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는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장관도 참석했다. 그러나 이들 장관의 담화가 위력을 발휘해 화물연대 파업이 타결됐다고 여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민주화 시대에 잘못된 권위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지켜야 할 정당한 법 집행의 권위까지 스스로 무너뜨려선 안 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는 공권력의 무기력한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최영훈 사회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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