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구본학]北 지원, 조급함 버리고 원칙 지키자

  • 입력 2008년 6월 9일 03시 01분


출범 100일을 맞은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과 대북정책이 실험대에 올라 있다. 대외정책의 핵심인 대미정책은 쇠고기 수입 문제로, 대북정책은 남북대화의 단절로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그런 가운데 5일 판문점에서 북핵 6자회담 경제·에너지실무그룹회의가 개최됐고, 북측의 핵 신고와 불능화 정도에 따라 대북지원에 대한 구체적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이 핵 불능화 조치 11개 중 8개를 완료함에 따라 미국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 및 적성국 교역법에서 해제하는 방안을, 6자회담 참여국들은 북한에 중유 50만 t과 에너지설비자재 50만 t을 제공하는 것 등을 고려 중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핵·개방 3000’으로 표현된다. 북한이 비핵화하고 개방하면 10년 안에 국민소득 3000달러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남북대화를 단절한 뒤 그 책임을 남한에 돌렸다. 또 개성 남북경협사무소 남측 당국자 11명을 추방하고, ‘핵전쟁의 불구름’ 등으로 답했다. ‘비핵·개방 3000’이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이며 남북관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 와중에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의 심각한 식량 사정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화답하듯 미국이 WFP를 통한 50만 t의 대북 식량 지원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이 식량을 제공하는 마당에 ‘북의 요청이 있어야 지원한다’는 원칙을 고집해 같은 민족으로서 북한 주민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미국이 북한과 직접 상대하는 상황에서 ‘비핵·개방 3000’은 실효성이 없으며, 오히려 북한의 ‘통미봉남’을 자초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4일 우리 정부가 옥수수 5만 t을 북한에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북한은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의 격렬한 대남 비난과 무응답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혼란에 빠뜨리는 동시에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해법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진작 그만두었어야 할 정책이었다. ‘인도적 지원’이라고 포장했으나 실제로 북한 주민에게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김정일 정권의 연장을 도와준 사실상 ‘비인도적 지원’이었다. 그동안 연 30만∼40만 t의 식량은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분 아래 차관 형식으로 북에 지원됐다. 인도적이라는 명분으로 제공된 쌀과 옥수수는 김정일과 그 측근, 평양 주민, 그리고 150만 명에 이르는 인민군에게 돌아갔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김정일의 독재권력을 연장해 준 수단이 된 것이다.

즉 ‘인도적 지원’은 김정일의 독재, 핵·미사일 개발과 대남 군사협박, 북한 주민의 굶주림과 인권탄압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주는 ‘비인도적 지원’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대화의 단절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할 경우 경제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분배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인도적 지원’은 그만두고, WFP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순수한 인도적 지원 채널을 활용해야 한다. 굶주리는 북한 주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인도적 지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북대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햇볕정책 10년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구본학 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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