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동원]노조에 유럽식 윈윈교섭 권한다

  • 입력 2008년 5월 27일 02시 58분


유럽연합(EU)의 실업률이 2006년부터 대폭 하락하고 있다. EU 통계청에 따르면 유로화 가입 15개국의 올 1분기 실업률이 7.1%로 1999년 유로화 출범 후 최저를 기록했다.

EU가 일자리 창출에 성과를 거둔 주요 이유는 복지제도의 성공적 개혁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유럽은 방만한 복지제도를 효율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민생활을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국가의 이상은 소외계층과 고령자, 빈민층에 대한 충분한 배려 등 긍정적 측면도 있다.

EU, 임금양보 고용보장 택해

하지만 과도한 복지부담으로 재정이 파탄 나고 생산가능인구의 노동시장 진입 의욕을 약화시키는 부작용도 있다. 즉, 과다한 실업수당은 일할 능력을 지닌 사람을 무위도식하게 하는 것이다. EU의 실업률이 획기적으로 하락한 것은 실업급여의 적정화로 다수의 실업자가 취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또 EU 노동조합의 태도가 변화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유럽의 노동조합이 임금인상 등 소수 노조원의 기득권 보호보다는 다수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기 위한 양보교섭을 적극 추구한 것도 고용증대의 한 원인이다. 양보교섭은 노조가 임금이나 근로조건은 양보하는 대신 고용안정을 강화하는 협약을 맺는 것이다.

양보교섭은 단체협상의 세계적 현상으로서 독일의 BMW와 도이체텔레콤 사례나 프랑스의 노사단체 합의를 비롯해 네덜란드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의 노사정합의도 복지를 축소하거나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동결하는 대신 고용의 안정과 증대를 목표로 한 것이다.

유럽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경우는 고용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통계를 보면 외견상으로 고용률 60% 정도에 실업률은 3% 중반이다. 그러나 실업통계의 맹점으로 구직을 포기한 실망실업자(혹은 구직 단념자)가 통계에 누락돼 있다. 이들 실망실업자를 포함하면 실업률은 10%에 가깝다.

특히 청년층과 노년층의 실업은 심각하다. 청년실업률은 공식통계로는 7∼8%이지만 체감실업률은 20%에 이르고 고용률은 불과 30%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원유, 곡물, 원자재 값 폭등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으로 경기침체가 가속화돼 고용사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EU의 사례는 우리에게 후발국가(late comer)효과로 불리는 시사점을 준다. 후발국가효과는 후발국가가 선진국의 실수를 피해갈 수 있어 좀 더 효과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한국의 경우 세수 증대가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이미 국민 1인당 세금부담률이 미국이나 일본을 상회한다. 아직 유럽 수준의 복지국가에 도달한 적은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효율적인 복지제도의 설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유럽의 사례는 한국 복지정책의 목표가 경제력이 미약한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면서도 생산가능 인력의 근로의욕을 저해하지 않는 적정 수준의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귀족노조, 이젠 기득권 나눠야

노동운동의 순기능은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이지만 한국 노사관계는 소수 노조원들을 위한 담합구조를 보여 왔다. 정규직 근로자들의 노조 조직률은 20%이지만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은 2∼3%에 불과하고 노조원의 절반 이상이 대기업과 공기업 소속의 기득권 근로자들이다. 소수의 기득권 근로자를 위한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향상이 대부분 노사협상의 주된 안건이다. 소수를 위한 임금인상보다는 비정규직과 실업자들의 일자리 마련을 위한 노사정 협상이 사회 전체를 위해 더 중요하다. EU의 사례는 한국의 노사관계도 소수의 기득권 보호에서 탈피하여 다수를 위한 고용확대라는 대승적 목표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일깨워 준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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