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人事 실패로 정부 실패 재촉할 건가

  • 입력 2008년 4월 20일 23시 05분


이명박 정부의 재외공관장 인사를 보고 있노라면 국민을 우롱하기로 작정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14일 인사에서 미국 애틀랜타와 로스앤젤레스 총영사로 내정된 이웅길, 김재수 씨는 대한민국 외무공무원이 될 수 없는 미(美)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다. 이 씨는 현지에서 일본 식당과 잡화상을 경영하고 있고, 김 씨는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말이 ‘내정’이지 총영사는 상대국의 아그레망(사전 동의)이 필요 없어서 임명이나 마찬가지다.

외교통상부는 처음 이 씨 문제가 불거졌을 때처럼 김 씨에 대해서도 “언론이 내정과 임명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임명될 때까지 영주권을 포기하면 된다”고 강변하고 있다. 시민권자인 이 씨는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자 스스로 사퇴했다. 이 씨의 경우 한국 국적을 회복하려면 4∼6개월이 걸리므로 언론의 비판이 없었다면 그대로 임명장을 받았을 것이다.

이번 재외공관장 인사는 청와대가 주도했다고 한다. 대사나 총영사 같은 재외공관장은 정치적으로 임명해야 할 경우도 있으니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불법인 줄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것은 공직을 사유물이나 전리품쯤으로 여기는 태도다. 모르고 저지르는 불법(不法)보다 알면서도 국민의 눈을 속이는 편법(便法)이 더 나쁘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다. 외교통상부는 그 과정에서 청와대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 차관이 이명박 정권의 외교 전도사인 양 행동하는 대선 캠프 출신이라 그런가.

이명박 정부는 정식 출범도 하기 전부터 부실 조각(組閣) 파동으로 국민의 신뢰를 깎아 먹었다. 4·9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자 다시 ‘제멋대로 인사’병(病)이 도진 듯하다. 인사 실패는 결국 정부의 총체적 실패로 이어질 우려가 높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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