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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8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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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짐바브웨에서 난민이 발생할까?’ 수단 다르푸르 같은 내전은 짐바브웨에 없다. 대기근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뉴스는 짐바브웨인 500만 명이 인근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보츠와나 등에 흩어져 산다고 전했다.
현지 영상은 지난달 29일 짐바브웨 대통령 선거 직전에 촬영한 것이었다. “군인과 경찰이 매일 폭력을 쓰니 선거 뒤가 두려웠어요.” 난민촌 주민의 말이었다. “애써 돈을 벌면 며칠 만에 휴지가 돼 먹고살기도 힘들었고요.”
올해 1월 짐바브웨의 인플레율은 전년 대비 10만 %가 약간 넘는다. 1년 사이 물가가 1000배로 뛴 것이다. 실업률도 80%에 달한다.
먼 아프리카 얘기에 눈길이 머문 것은 짐바브웨에서 대선이라는 흥미로운 이벤트가 펼쳐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난민촌이 있는 옆 나라 보츠와나는 6년 전인 2002년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일이 있다.
“일본이 보츠와나 같은 나라보다 신용등급이 낮다니, 대체 말이 되는가.” 일본의 한 장관이 분통을 터뜨리며 한 말이었다. 당시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보츠와나의 국채 신용등급을 일본보다 높게 평가했다.
어떤 나라이기에 그랬을까. 6년이 흐른 지금 보츠와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료를 찾아보았다. 구매력평가(PPP)를 적용한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4700달러. 폴란드나 발트 3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1966년부터 30년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를 넘었다. 반면 풍부한 금광과 면화 생산량을 자랑했던 이웃 짐바브웨는 오늘날 각종 경제지표가 ‘사실상 측정 불가’ 상태다.
보츠와나를 오늘날 아프리카의 모범생으로 만든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1960년대 다이아몬드 광맥 발견이 이 나라에 복권 당첨과 같았던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에서 다이아몬드는 축복은커녕 내전을 불러온 재앙이었다.
대신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발간하는 ‘CIA 월드 팩트북’은 이 나라를 융성하게 만든 첫 번째 비결로 지도자 및 공무원들의 청렴과 헌신을 꼽는다. 독일 베텔스만 재단이 2월 발표한 125개국 정치지도자들의 국가경영 역량 평가에서 이 나라는 칠레와 에스토니아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국가별 투명도지수에서도 매년 20위권에 든다.
두 번째 비결은? 과감한 경제자유화다. 각종 정부 규제 철폐에 팔을 걷어붙인 결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월 발표한 세계 경제자유도 순위에서 이 나라는 한국보다 5계단 높은 36위였다. 반면 짐바브웨는 2000년 백인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해 일괄분배하면서 농업파탄을 초래해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예전에 소작인이었던 농민들은 자기 것이 된 땅을 관리할 지식도 장비도 없었다.
인접한 나라의 명암이 엇갈린 사례가 우리에게 낯설지는 않다. 보츠와나-짐바브웨의 이야기와 한국-북한의 이야기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콩쥐팥쥐’ 이야기처럼 동일한 서사 구조를 갖는다. 그것은 자립과 분배를 앞세우다 위기를 맞은 국가와, 개방과 창의를 강조해 번성한 나라의 엇갈린 운명을 가슴 아플 정도로 또렷하게 보여준다.
유윤종 국제부차장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