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정몽준과 정동영

  • 입력 2008년 3월 19일 02시 55분


4월 9일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행마(行馬)술이 점입가경이다.

통합민주당이 서울에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대선 후보를 내세워 ‘장군’을 부르자 한나라당은 박진 의원과 정몽준 최고위원으로 ‘멍군’을 불렀다. 한나라당이 나경원 전 대변인을 전략 공천한 서울 중구에는 자유선진당이 박성범 의원의 부인인 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를 공천할 예정이다.

특급 대형마들이 뛰는 서울은 물론이고 영남과 호남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탈락한 거물급 인사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쉽사리 판세를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최대 이슈는 정몽준과 정동영의 대결. 두 사람 모두 대통령 후보였던 데다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남은 한국 최고의 블루칩들이기 때문이다.

정몽준 최고위원은 준수한 외모,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대한축구협회 회장이라는 화려한 경력에 현대가(家)의 아들이라는 백그라운드까지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그러나 그동안 국민의 눈에는 5% 부족해 보였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환경을 다 갖고 있으니 황태자, 귀공자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기업 총수라면 다소 신비에 싸여 생활하는 것도 좋지만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인으로서는 결함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과감한 결단과 희생, 스스로를 낮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 이런 것들이 없어 보였다. 2002년 대선 정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지도자로서 정확한 판단력과 신중함을 갖췄는지 의문을 갖게 했다.

정동영 전 대선 후보 역시 나무랄 데가 없다.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민주화운동 경험에다 MBC 기자, 열린우리당 의장, 통일부 장관 등 국정을 맡는 데 필요한 경력을 두루 갖췄다.

그러나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뚜렷한 업적이 떠오르지 않고 ‘말은 잘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정치적 리더십도 미지수다. 지난해 구 민주당과 합당 서명을 한 지 며칠 만에 합당이 무산되자 당내에서는 ‘정 후보가 조금만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나왔다.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선거인단을 불법 동원한다는 시비가 잇달았다. 대선 막판에는 세가 몰리자 “내가 무엇을 하겠다”보다 BBK 등 네거티브 공세에만 기대는 모습을 보였다.

훌륭한 두 사람이 5%씩 부족해 보이는 이유는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뤘고, 그래서 나라도 잘 이끌 수 있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고난을 이겨내고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군부독재에 맞서 단식투쟁을 하면서, 감옥 속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기득권을 버리는 승부수로 새 길을 개척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두 사람은 이번 총선에서 편안한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당신의 능력과 의지를 보여 달라’는 요구에 답할 수 있는 기회다. 한 사람은 이기고 한 사람은 질 것이다. 승자는 대권 가도에 초석 하나를 더 놓게 된다. 패자는 험난한 정치적 여정을 맞겠지만 담금질을 거쳐 더 큰 지도자로 거듭날 수도 있다.

두 사람의 깨끗하고 멋진 승부를 기대한다.

신연수 정치부 차장 yssh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