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플러스]나이 거꾸로 먹는 ‘은퇴 설계’의 힘 !

  • 입력 2007년 11월 1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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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구 남천동 부산노인일자리교육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인생애경력 조언자 양성 프로그램’ 교육 현장. 은퇴자에게 전문적인 상담서비스를 제공할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으로, 첫해인 올해에는 수료증을 발급하지만 자격화를 계획 중이다. 정동우  기자
부산 수영구 남천동 부산노인일자리교육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인생애경력 조언자 양성 프로그램’ 교육 현장. 은퇴자에게 전문적인 상담서비스를 제공할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으로, 첫해인 올해에는 수료증을 발급하지만 자격화를 계획 중이다. 정동우 기자
《“주위의 많은 노인이 빈곤, 질병, 고독, 무위 등 노년의 ‘4고(苦)’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은퇴 후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아무런 준비와 마음의 자세도 없이 그 생활에 접어들기 때문입니다.”

이태웅(68·광주 남구 봉선2동) 씨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2000년 정년퇴직 후 한동안 무료함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올 8월부터 ‘은퇴생활 설계 지원 프로그램’에 다니면서 비로소 은퇴 후 생활을 새롭게 설계하기 시작했다.》

지자체 ‘생활설계 지원’ 프로그램 큰 인기

부산 - 광주서 760명에게 개인별 맞춤교육

月 수강료 2만∼4만원… 내년 6곳으로 확대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살리면 훨씬 재미있고 활기찬 노년 생활을 보낼 수 있는데도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무위도식하면서 상실감에 시달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씨는 현재 광주 서구 시니어클럽에 출근하면서 직장생활 인턴십을 하고 있다. 인턴십이 끝나면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다.

“인생 말년이라는 생각 버려”

이연숙(73·여·부산 함지골 청소년수련관 부관장) 씨 역시 올 9월부터 이 프로그램에 남편 이호영(80) 씨와 함께 다니고 있다. 이 씨는 “현재의 나이가 인생의 말년이 아니라 아름답고 재미있게 살아가면서 사회에 봉사도 할 수 있는 적령기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원장 변재관)이 부산시와 광주시의 위탁을 받아 실시하고 있는 ‘은퇴생활 설계 지원 프로그램(PBL)’과 ‘노인생애경력 조언자 양성 프로그램(SLCA)’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은퇴생활 설계 지원 프로그램은 은퇴자나 예비 은퇴자를 대상으로 은퇴에 따른 막연한 불안감을 없애고 스스로의 잠재력을 계발하여 새로운 인생설계를 하게 함으로써 노후 생활을 활기차게 보내게 하는 교육과정이다. 노인 조언자 양성 프로그램은 노인 관련 기관 종사자나 일반인들을 상대로 노인들의 경력 개발, 재무 설계, 여가 설계 등에 대한 전문 조언자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포스코 한전 등 대기업에서 퇴직 예정자에게 은퇴 준비 교육을 시킨 일이 있지만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공공 영역에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한 일은 없었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에서도 일본 미국에서와 같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은퇴 후 생활설계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산과 광주에서 올 8월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부산의 경우 PBL 과정 3개 반에서 162명, SLCA 과정 5개 반에서 287명이 수강 중이다. 광주는 PBL 과정 3개 반에서 164명, SLCA 과정 2개 반에서 152명이 수강하고 있다. 반별로 요일을 정해 주1회 점심식사가 제공된다.

하루 5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강의에 대한 수강생들의 참여도와 집중도는 애초의 예상을 초월할 정도다. PBL 과정은 수강생의 평균 나이가 65세로 고령자가 많은데도 졸거나 중간 퇴실자가 거의 없이 모두들 강의에 몰입한다는 것.

하루 5시간 강의 열기

개월 동안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PBL 과정의 경우 처음 두 달 동안 시간관리, 건강, 역량, 일, 재산, 취미생활 등 영역별 자기진단을 통해 스스로를 분석하고 자신의 역량과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둔다.

후반기 두 달 동안은 구직, 창업, 지역사회 봉사, 인생설계 교육을 통해 앞으로의 인생을 생산적이고 보람차게 보내는 방안을 액션플랜 작성을 통해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SLCA 과정에서는 자기진단 기법, 경력 개발, 카운슬링 기법, 구직 지도 등을 배우게 된다.

월 수강료는 PBL과 SLCA 과정이 각각 22만 원과 24만 원이지만 이 프로그램이 지자체의 지역주민 교육사업에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강생 1인당 월 20만 원(정부 70%, 지자체 30%)씩 지원되고, 개인은 각각 2만 원과 4만 원만 부담하면 된다.

“제2의 직업 선택에 도움”

퇴직을 5년 앞둔 직장인으로 이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있는 임종식(52·광주 남구 주월동) 씨는 “다니는 직장의 추천을 받아 수강을 시작했을 때는 노인 일자리 교육 정도로 생각했는데 교육을 받아 보니 진작 이런 교육을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임 씨는 “취미생활을 선택할 때 은퇴 후까지 계속 즐길 수 있고 제2의 직업으로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을 골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SLCA 과정을 수강하고 있는 박대영(37·여·부산 수영구 남천동 부산노인복지문화센터장) 씨는 “노인복지관 등에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노인들이 미래생활을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육은 부족하다고 느껴 왔다”며 “이번 과정에서 노인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찾아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기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교육지원팀 송헌우 대리는 “이 프로그램을 부산과 광주에서 시작하게 된 것은 여러 지자체 중 이들 지역이 우리 제의를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며 “수강생들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은퇴를 새롭게 보게 됐으며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송 대리는 “내년에는 이 프로그램 시행 지역을 전국의 6개 도시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

▼“노후자금 마련해 뒀다고

은퇴 후 준비 끝은 아니죠”▼

‘노년설계’강의 이정화 교수

“남성은 은퇴 후 아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나도족’과 ‘젖은 낙엽족’을 없애고, 여성은 자녀 교육이 끝난 뒤에 겪는 중장년기 우울증을 줄이는 것이 우리의 교육 목표 중 하나입니다.”

은퇴생활 설계 지원 프로그램(PBL)과 노인생애경력 조언자 양성 프로그램(SLCA)에서 여가 설계 교육을 담당하는 한국디지털치료레크리에이션협회 홍성아(38) 차장의 말이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제일 먼저 자신들이 보내고 있는 여가생활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떠한 여가생활을 원하는지를 규명하는 작업부터 시작한다”고 소개했다.

홍 차장에 따르면 모든 사람의 여가생활에는 나름대로의 ‘꼴’이 있다. 혼자 즐기는 형인지, 여럿이 시간을 보내는 형인지, 정신적인 놀이 추구형인지, 신체적인 놀이 추구형인지 등 여가를 보내는 꼴을 분석하면 특정인의 여가생활의 실체와 문제점, 대안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는 “초기 면접과 여가 검사를 통해 해당자가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취미를 찾아내 자신의 레저 ‘그림’을 작성하게 하고 그것을 실천하도록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소개했다.

‘성공적 노년 보내기’ 과목을 강의하는 전남대 생태환경복지학과 이정화(41)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까지 은퇴 후 준비는 오로지 노후자금 마련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서 “그러나 노년세대가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며 긍정적이고 열린 자세로 살아가고 있느냐는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과도 관련된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강의를 통해 “청년기에는 교육을 받고, 중장년기에는 일을 하며, 노년기에는 여가를 즐긴다는 식의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은퇴 후에도 교육받고 일하며(자원봉사 포함) 여가 즐기기를 병행해야 건강하고 성공적인 노년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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