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길진균]‘전투기 정비 감사 결과’ 국민은 몰라도 되나

  • 입력 2007년 7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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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은 안 주고 당장 최전방 전투비행단은 작전 불능 상태인데 그럼 어떻게 합니까.”

한 공군 장교의 하소연이다.

2002년 태풍 ‘루사’가 국토를 할퀴고 지나갔을 때 공군 전투비행단이 배치된 강릉비행장의 95%가 수몰됐다. 당국은 보안상의 이유로 피해 상황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비행장 인근 3개 하천의 범람과 저수지 붕괴로 배치돼 있던 항공기 50대 중 16대가 침수되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국민이 모르는 사이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최전방 전투비행단이 작전 불능 상태에 빠져 안보에 ‘구멍’이 뚫린 사건이었다.

군은 서둘러 기획예산처에 기지 복구를 위한 예비비 지급을 신청했지만 기획예산처는 이를 거부했다. 정부는 당시 9470억 원의 수해 복구 예산을 책정했지만 예산 편성 우선순위에서 기지 복구비는 뒤로 밀렸다. 공군은 결국 항공기 정비예산에서 662억 원을 전용해 기지를 복구했다.

한 번 구멍이 난 공군의 항공기 정비예산은 그 다음해 예산에서도 충당되지 않았다. 공군의 이런 ‘돌려 막기’식 정비예산 전용은 해마다 반복됐고 2000∼2005년에 공군은 정비예산 2476억 원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2월 발생한 KF-16 전투기 서해 추락사고의 원인도 엔진 정비 부실이다. 1대에 425억 원이나 하는 전투기가 수장된 것이다. 넉넉하지도 않은 항공기 정비예산의 전용이 불러온 ‘인재(人災)’였다.

공군의 경우 신형기 도입과 노후기 수명 연장으로 수리 부속 품목은 2000년 17만4848종에서 지난해 26만8522종으로 53% 늘었지만 정비예산은 2000년 3788억 원에서 지난해 3813억 원으로 25억 원(0.1% 미만) 증가에 그쳤다.

감사원은 최근까지 진행된 공군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통해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악했다. 그리고 지난달 말 감사위원회를 열어 일부 공군 장병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감사를 ‘조용히’ 종결했다.

감사원은 이례적으로 감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것에 대해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안이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이 낸 세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문제가 있다면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국민에게 알려주는 것 역시 안보 못지않게 중요하다.

길진균 정치부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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