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용이 못 되는 법

  • 입력 2007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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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인 1997년 나는 신한국당 출입기자였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에는 ‘9룡’으로 불릴 정도로 대선주자가 차고 넘쳤다. 김덕룡 박찬종 이수성 이인제 이한동 이홍구 이회창 최병렬 최형우(가나다순) 씨가 그들. 야권에서는 국민회의 김대중, 자민련 김종필 후보가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었다.

범여권에 20명 가까운 대선주자가 난립하고,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양강(兩强) 구도를 이루는 작금의 상황과 비슷했다.

2002년에도 여당인 민주당에선 7명이나 경선에 출마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이회창 후보로 사실상 단일대오를 형성했다.

여당의 후보 난립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인 대통령은 가급적 임기 말까지 후계자를 낙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낙점과 동시에 레임덕이 폭발적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반면 야당은 일찌감치 한두 명의 유력후보를 중심으로 뭉치기 마련이다. 그러지 않으면 대통령과 여당의 파워와 물량 공세를 견뎌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신한국당의 ‘9룡’ 가운데 진짜 용이 된 주자는 한 명도 없다. 그들이 등용문(登龍門)의 문턱에서 추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느낀 주자별 패인(敗因)은 이렇다.

A 주자는 비교적 높은 지지도로 각광을 받았다. 그와 단둘이 만나 취재하려는데 불쑥 ‘나와 함께 청와대로 갑시다’라고 말했다. 제대로 면식도 없던 내게 그런 제의를 하는 걸 보고 그의 실패를 예감했다.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인기는 롱런하기 어렵다.

B 주자는 반면에 너무 인격자였다. 그는 금도를 보이면서 끝까지 김영삼 대통령의 낙점을 기다렸다. 하지만 권력의 세계에서 ‘공짜 점심’은 없다. 올해 고건 전 국무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가도 중도하차를 보면서 B 주자를 떠올렸다. 고 전 총리와 정 전 총장 주변에선 ‘돈과 조직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두 사람에게 정말 부족했던 건 권력의지가 아니었을까.

C 주자는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기 전부터 주변에서 ‘정말 훌륭한 분’ ‘뛰어난 분’이란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그는 말 한두 마디만 나눠 봐도, 아니 보기만 해도 끌리는, ‘관계의 달인’이었다. 그러나 콘텐츠가 부족했다. 인간관계로 콘텐츠 부족을 메울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던 것이다.

D 주자는 정치판을 잘 읽고 매사를 명쾌하게 정리하는 능력이 있었다. 자신감이 넘쳤다. 너무 넘쳐서 부끄러워해야 할 때도 당당했다. 부끄러워해야 할 때는 부끄러운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사람 사는 이치가 정치공학보다 앞선다는 건 몰랐던 것 같다.

E 주자는 가장 유력했다. 그의 실패를 두고 가족의 허물과 귀족 이미지, 상대측의 네거티브 공세를 얘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는 진정한 우군을 만들지 못했다. 주변에는 그의 파워와 가능성을 좇는 추종자와 철새들만 우글거렸을 뿐, 기꺼이 주군을 위해 몸을 던질 측근이 없었다. 물론 이는 자초한 것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탄생의 바닥엔 충성심과 결집력이 강한 가신그룹이 있었다.

벌써부터 적지 않은 대선주자들이 용이 못 되고 이무기로 전락한 이들의 전철을 똑같이 밟으려 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던가.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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