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 입력 2007년 1월 2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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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에티오피아가 소말리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소말리아를 사실상 지배해 온 이슬람법정연대(UIC)를 타도했다. 명백한 침략 행위였다. 그러나 UIC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떠올리게 하는 급진 이슬람 세력이었기에 에티오피아의 침략은 비난보다는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소말리아 위기를 보며 국제정치의 ‘낡고도 새로운’ 문제를 떠올린다. 나쁜 정부를 쓰러뜨리면 평화가 오는가라는 문제다.

‘나쁜 정부’에는 여러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정부는 나쁘다는 사람도 있고 독재정권은 나쁘다는 주장도 있다. 나아가 모든 정부는 어떤 형태로건 나쁘고 정부의 선악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치 독일이 나쁜 정부였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정부를 전쟁을 통해 쓰러뜨린 것이 잘못이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캄보디아의 폴포트나 옛 유고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나쁜 지도자’였다는 점도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나 중국의 마오쩌둥처럼 대량 학살이나 인권 억압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힘으로 타도되지 않은 지도자도 많았다. 그러나 냉전 종결 후의 현대는 다르다. 대량 살인을 행하는 독재자가 방치되지 않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주장에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그럼 이라크는 어떨까. 사담 후세인이 ‘나쁜 지도자’였다는 점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이라크 국내에서의 쿠르드족 살육이나 이란과의 전쟁에서 독가스를 사용한 것만 보더라도 이 독재자의 죄악은 명백하다. 따라서 2003년 이라크전쟁은 정의의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쁜 정부를 타도했으니 평화가 올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정부라고 불릴 만한 정부가 존재하지 않고 힘의 진공이 생긴다면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나쁜 정부에 필적하는 재앙을 안겨 주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이라크의 문제는 정부가 나쁜 게 아니라 정부가 없다는 간단한 사실이다. 정부가 없을 때 갖가지 무장집단이 힘에 의지해 주민을 위협하는 사태가 생겨난다. 이라크인이 후세인 시대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면 나쁜 정부와 힘의 공백 중 어느 쪽이 더 나쁜 상태인가를 그리 간단하게 판단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소말리아의 경우 UIC는 타도됐고 에티오피아의 병력도 철수 중이라고 보도됐다. ‘나쁜 정부’를 타도한 후에 생겨나는 문제는 타도한 측이 정복자로 남아 철수하지 않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딜레마지만 소말리아의 경우 이 딜레마는 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더 귀찮은 문제가 남겨졌다. 앞으로 실효적인 지배를 할 정부를 소말리아에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정부 구축에 실패하면 소말리아에는 혼란이 부활하고 새로운 위기가 생길 우려가 크다.

물론 문제가 소말리아에만 있지는 않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국민에 대한 가혹한 지배 하나만 보더라도 나쁜 정부 그 자체다. 이 정부와 교섭해서 공존을 도모하는 것은 북한 국내에서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의 고뇌를 묵과하는 행위가 된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는 형태와 무너뜨리는 방식에 따라서는 지금 북한에 사는 사람들의 고뇌를 더욱 깊게 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답을 내리지 않고 이 글을 끝내 두고 싶다. 칼럼 안에서라면 몰라도 현실 외교에서 힘의 진공을 낳지 않고 나쁜 정부를 타도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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