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종섭]지역주의 망령 되살리겠다고?

  • 입력 2006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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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가을, 이 나라 운명은 내우외환(內憂外患) 속에 놓여 있다.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국은 북한에 목덜미가 잡힌 채 질질 끌려가고, 국가안보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버렸다. 아무리 최신의 재래식무기를 내보인들 망가진 양철조각에 불과하다. 이런 판국에 태극기를 향해 경례하는 군 수뇌부의 모습은 무너진 외양간 문틀을 잡고 있는 농부처럼 슬프게만 보인다.

이 정부는 자주니 동북아균형자니 하면서 실로 외교와 국방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로 허송세월하더니 결국 동아시아의 안보와 외교에서 왕따가 돼 버렸다. 이런 판국에 국가 안전과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대통령은 북핵 위협이 과장되고 있다는 둥 무책임한 발언이나 하고, 국제사회에서는 누구도 제대로 상대해 주지 않아 그야말로 왕따로 내동댕이쳐져 있다. 통일이나 동북아 안보를 놓고 일본 중국 미국 어느 나라도 한국 대통령을 비중 있게 보지 않고, 북한조차도 우습게 여긴다.

선진화된 한국을 만들어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에 4년 동안 낡아 빠진 이념논쟁과 한풀이나 해 온 탓에 외교와 안보는 물론이고 교육, 경제, 노동, 부동산, 복지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된 정책이 없다. 시스템이니 로드맵이니 하며 말로 시간만 보내다가 국정 운영의 무능으로 나라를 정처 없이 표류하게 만들어 놓았다. 정부의 역할이 사회 갈등의 조정과 해소인데, 이 정부에서의 사회 갈등과 국민 분열은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북핵… 사회갈등… 내우외환

나라 상황이 이런데도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지역주의가 또 고개를 쳐들고 있다. 나라의 운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세력 기반만 확보하기 위해 지역주의를 선동하며 지역병(地域病)을 유포하고 있다. 현재 합종연횡을 노리는 세력들이나 새로이 정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세력들의 행보를 보면, 여전히 지역주의를 부추겨 세력 기반으로 삼겠다는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는 대통령을 지낸 이까지 목포에 내려가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지역주의를 선동했다. 나라의 위기와 국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 갈등의 근본 원인은 권력과 돈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불공평하게 배분한 것에서 비롯한다. 경기에서도 승자가 이겼다고 모든 것을 독식하면 패자가 참지 못하는 법인데, 국리민복을 실현하고 공동체와 전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구현해야 할 정부에서 특정 세력이 권력과 돈을 다 가진다면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국가는 특정 세력의 사유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이런 권력과 부의 배분에 심한 불균형을 가져왔다. 대통령이 나온 지역의 사람들이 대통령 임기 동안 권력과 돈을 독식했던 것이다. 경북이 그랬고 호남이 그랬고 경남이 그랬다. 특히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의 반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득표로 당선돼 국민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한 세력들이 권력과 돈을 나누어 가졌다. 역대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나 국책 사업의 현황이 이를 잘 말해 준다. 대통령 출신 지역 사람들이 국가의 중요한 자리를 다 차지하고, 각종 국책사업이니 지역개발이니 하는 명목을 달아 결국 자신들의 배를 채운 것이다.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는 삼국시대로 올라가 신라 백제 고구려에서 갈라지는 것도 아니고 각 지역 사람들의 심성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지역 문제는 자원 배분의 불균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지역주의가 현재 이 시간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개 드는 분열세력 심판을

이런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선진화는 요원하며, 국민 통합도 헛된 구호에 불과하다. 헌법을 바꾸어 대통령제를 내각책임제로 바꾸자는 제안도 대부분 민주주의에 성공한 선진국들이 내각책임제를 채택해서만이 아니라 한국의 지역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방책이다.

이런 국민적 과제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정치판에서는 오로지 다음 선거에 이기고 보자는 논리로 다시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이러면 정말 한국은 미래가 없다. 이제 국민이 우리 사회 분열주의의 근본 원인을 직시하고 지역주의를 선동하는 망국의 분열 세력을 응징할 때가 왔다. 정부가 길을 잃고 허우적거릴 때는 국민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한다.

정종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 jscho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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