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MVP 박진만 “이의없습니다”

  • 입력 2006년 10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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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8일 수원 구장. 현대와 SK의 시범 경기가 끝난 뒤 현대 유격수 박진만(30·현 삼성)이 포수 장비를 갖추고 백스톱(관중 보호용 그물) 앞에 섰다.

김재박(현 LG) 감독이 펑고(내야수에게 치는 땅볼)를 치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계속된 일대일 훈련이 끝나자 박진만은 녹초가 됐다. 김 감독의 손에서는 피가 배어 나왔다. 김 감독은 “박진만의 자세가 느슨해서…”라고 짧게 말했다.

당시에도 박진만은 수준급 유격수였다. 관중과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런 훈련을 했으니 박진만의 자존심이 크게 상할 만했다.

그러나 박진만은 “그 일 이후 공 하나하나를 더욱 아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해 현대는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9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했다.

2년 뒤인 2006년 한국시리즈. 삼성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박진만은 경기마다 빼어난 수비 실력을 선보이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자신은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 정규 시즌이나 한국시리즈를 통틀어 수비를 잘해서 MVP를 수상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유격수’ 박진만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땀이 숨어 있다. 1996년 현대에 입단한 박진만은 초반 3년을 절대 잊을 수 없다.

현역 시절 명유격수였던 김 감독은 “프로에서 유격수는 수비를 못하면 경기를 뛸 수 없다”며 틈만 나면 수비 훈련을 시켰다. 박진만은 아침, 점심, 저녁도 모자라 야간 훈련까지 공을 받았다. 그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시드니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국제 대회를 통해 더욱 성장했다. 그는 “처음 몇 년은 부담 속에 뛰었고, 다음 몇 년은 여유를 가졌으며, 지금은 경기를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박진만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과 상대했던 한화의 베테랑 유격수 김민재는 “진만이에게 파인플레이가 없는 이유를 아는가. 다른 선수라면 어렵게 잡을 공을 진만이는 쉽게 잡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WBC에서 한국에 졌던 미국과 멕시코의 감독 역시 가장 눈에 띄는 선수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이름은 몰라도 유격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 박진만이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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