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데이비드 브룩스]이념 시대의 종언

  • 입력 2006년 10월 31일 03시 03분


코멘트
진보주의가 지배적인 시기도 있고 보수주의가 대세인 시기도 있지만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아예 없는 시기도 있다.

1932년부터 1968년까지의 시기에는 진보주의가 미국 정치를 지배했다. 사회보장제도, 의료보장제도, 민권운동을 비롯한 위대한 업적들이 진보주의의 성과였다. 공화당이 백악관을 차지했던 시기에도 대세는 진보를 향했다.

1980년부터 2006년까지는 보수주의가 지배적이었다. 보수주의의 위대한 업적은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세제개혁과 통화개혁을 이룬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민주당 집권기에도 보수화라는 대세의 흐름을 따랐다.

그러나 어떤 시대에는 지배적인 정치적 경향을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1970년대가 그런 시기였다. 한때 진보주의자였던 이들은 방황했다. 유권자들은 정치 자체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치적 성향의 추는 좌나 우가 아니라 정치에서 비정치적인 것으로 옮겨졌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정치의 일반적인 방법론을 깨뜨리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없는 세계로 진입하려는 문턱에 서 있다. 이번 선거가 보수주의에 대한 종언을 고할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정치사적으로 볼 때 쉼표(comma)가 아닌 마침표(period)라 할 수 있다.

이는 공화당이 다수를 잃을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들 때문이다.

첫째,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의 어젠다를 소진했다. 예산 운용이나 외교정책에서 보여 온 그들의 강점마저 잃어버렸다. 둘째, 보수주의자들은 제도적인 부패에 따른 스캔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셋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연합세력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치달으며 분열하고 있다. 넷째,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자로 나설 생명력 있는 정통 보수주의자 후보가 없다. 보수주의계의 이단자나 마찬가지인 존 매케인과 루돌프 줄리아니, 미트 롬니와 같은 인물들이 떠오르고 있다.

가까운 시기에 정치판에서 살아남는 후보자들은 정치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들은 매케인이나 배럭 오바마와는 달리 신중한 스타일을 보이는 비동조자(maverick)의 모습을 보일 것이다. 아니면 우리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범주의 사람이 될 것이다.

진보의 시기에 도시를 중심으로 한 동북지역이 지배권을 가졌다면 보수주의 시기에는 남부와 남부 캘리포니아의 베드타운 지역이 중심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시기의 정치적 무게중심은 서부와 중서부의 평원으로, 실용주의로, 넥타이 부대로 옮겨 갈 것이다.

앞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문제점을 가장 정확하게 인지해 내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취급될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지속적인 부상이다. 민족국가 시대의 범주인 공세정책이나 봉쇄정책은 극단주의를 되돌리는 데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문제는 각종 수혜권자를 양산하는 현실 및 정부의 무능력이다.

세 번째 도전은 중국과 인도의 등장이다. 이 나라들의 근로자들이 치열한 경쟁의 고통을 가져오며 미국의 회계 불균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

네 번째는 특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지적 기술과 문화 자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정당은 이런 경향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당은 이런 문제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때가 돼서야 새로운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가 등장할 것이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