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北核’ 원죄는 북한에 있다

  • 입력 2006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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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은 미국 조지 W 부시 정권의 공격적인 정책이 낳은 결과라는 주장이 있다. 동의할 수 없다. 부시 정권의 문제는 ‘공격적인’ 정책이 아니라 대북 정책의 부재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주장은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탈퇴하고 플루토늄형 원자폭탄의 개발을 공공연하게 재개한 것은 2002년 말∼2003년 초였다. 북한의 공격적인 정책은 그전부터 시작됐다. 1998년 미사일 실험을 했고 그 전후에 우라늄 농축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핵개발 재개와 미사일 개발에 대한 북한의 의지는 부시 정권 출범 전부터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다.

분명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월 ‘악의 축’ 연설을 했고 이듬해 5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발표하는 등 북한의 위협에 대항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악의 축’ 연설 뒤에도 구체적인 대북 정책은 내놓지 않았다.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자는 건지, 북한과의 교섭에 응한다는 건지, 다시 말해 ‘정권 교체(regime change)’ 요구인지, 외교인지의 자세가 결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부시 정권은 늘 북한 문제보다 중동 정세를 우선시했다. 이라크전쟁 개전 직전 기자의 질문에 대해 “북한은 지역 문제에 불과하다”고 답했던 데서도 드러나듯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문제였던 것이다.

급기야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이탈해 핵개발을 재개하고 핵실험까지 해 버렸다. 그리고 핵실험 뒤에야 겨우 북한의 핵 보유를 막는 국제 연대를 위한 외교 노력이 시작됐다. 바야흐로 미국 대북 정책의 공백이 끝나 가는 것이다.

대북 정책에 대한 또 하나의 주장은 ‘중국 정부는 자국의 안전 보장을 위한 도구로 북한을 이용해 왔다. 그러므로 대북 제재에 중국이 찬성할 리 없다’는 중국 불신론이다. 한국에서 미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논의가 많은 반면 중국 불신론은 일본에서 많이 제기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도 동의할 수 없다. 중국의 대북 정책은 지금 극적인 전환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중국은 북한을 국방에 이용하고 한반도 분단을 지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현재의 중국과 맞지 않는 체제다. 그 체제가 핵을 보유하면 중국에 대해 독립된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정부로서는 그런 체제보다는 중국 및 한국에 협조적인 북한 정권이 창출되는 편이 유리할 것이다. 즉 중국은 남북 분단을 고정화한다는 전통적인 정책에서 방향을 바꾸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을 중국 국방의 수단으로 잡아 두려는 목소리가 인민해방군 등에 남아 있다. 그러나 후진타오(胡錦濤) 정권은 이미 북한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다. 이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한 찬성도 그런 흐름에서 봐야 한다. 과거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를 포기한 것처럼 지금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려 하는 것이다.

북한 핵에 대한 대처에서 이 같은 미국과 중국의 정책 전환을 빼놓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단독 행동에 의존해 다국 간 협의를 경시해 온 미국은 이제 관련국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외교에 힘쓰고 있다. 단독 행동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긴 하지만, 적어도 ‘정책은 없으면서 관련국들의 이니셔티브는 방해했던’ 과거보다는 훨씬 효과가 있을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실효적인 경제 제재를 가하는 유일한 국가로서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도 크다.

북한 핵실험은 지역 안전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미국이나 중국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 위기를 전쟁에 호소하지 않고 타개하기 위한 국제 결속이 이제야 가능해지려 하고 있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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