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94>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2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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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편 관영과 조참의 분전으로 또 한번의 참패를 면한 한나라 장수들은 패왕이 길을 앗아 달아나자 비로소 기세를 되찾았다. 뒤늦게 한왕을 찾아가 전군을 들어 패왕을 뒤쫓자고 졸라댔다. 패왕의 무시무시한 투지와 엄청난 돌파력에 다시 한번 질렸는지 한왕이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됐다. 우리가 이겼다는 소문만으로 넉넉하다. 이 소문이 귀에 들어가면 한신과 팽월은 시각을 다투어 과인의 군막으로 달려올 것이다. 호랑이 사냥은 그때 다시 시작하자. 전력을 모아 한 싸움으로 항우의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는 술과 고기를 내어 장졸들을 먹인 뒤 편히 쉬며 한신과 팽월이 대군을 이끌고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멀리 회남(淮南)에서 노관과 유고가 보낸 사자가 이르렀다.<신(신) 노관과 유고는 회수(회수)를 건너 수춘(수춘)을 에워싸고 있고, 회남왕 경포는 육현(육현)을 치고 있으나, 구강(구강) 땅을 평정하는 일은 뜻 같지가 못합니다. 특히 초나라의 대사마 주은(주은)이 대군을 이끌고 서현(서현)에 머물러 있어 언제 그 사나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낼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주은이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 싸움의 승패를 살피고 있는 듯하니, 형세가 나은 대왕께서 사자를 보내 그를 한번 달래 보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회남에서 보내온 글의 뜻은 대강 그랬다. 그때 한왕은 사람을 끌어들여 제 편을 늘리는 일에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특히 적을 꾀어 제 편을 만드는 것은 꾀어 들인 세력의 두 배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라, 어디든 틈만 보이면 비집고 들 때였다. 그날로 군중에서 말주변 좋은 빈객(賓客) 하나를 골라 예물을 갖춰주고 서현으로 달려가게 했다. 주은이 귀순하면 내리겠다고 약조한 봉작(封爵)이 엄청났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 무렵 팽월은 패왕 항우가 한왕에게 끌려 다니느라 비워둔 양(梁) 땅으로 다시 돌아와 크게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수양(휴陽)에서 대량(大梁)에 이르기까지 스무 개가 넘는 성을 빼앗고 널리 군사를 긁어모아 그 위세가 옛적 위왕(魏王)에 못지않았다. 그러나 한왕의 간곡한 부름을 따르지 않고, 무리와 더불어 대량에 머물면서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천하의 형세를 살피고 있었다.

팽월이 한왕 유방이 내린 관작을 받고 그를 주인으로 받들게 된 것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無所屬) 떠돌면서 받은 설움 때문이었다. 별것 아닌 것들이 패왕의 눈에 들어 왕이니 제후니 하는 동안에도 1만이 넘는 정병을 거느린 팽월은 여전히 이름 없는 토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왕 아래 든 뒤에도 오래 야도(野盜)와 수적(水賊)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며 늙어오는 동안 팽월의 몸에 밴 습성은 누구에게 얽매이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명분만 한왕과 군신(君臣)으로 해놓고 언제나 한나라를 겉돌았다.

한왕의 잦은 군사적 패배도 팽월이 모든 것을 걸고 그 밑으로 드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허울뿐인 한나라의 관작을 받은 뒤로 팽월은 한번도 한군이 통쾌하게 이겼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한왕에게서 달려오는 사자마다 죽는 소리요, 도와달라는 당부뿐이었다. 초나라의 양도(糧道)를 끊어 달라, 패왕의 뒤를 유격(遊擊)해 다오, 양(梁) 땅을 어지럽게 만들어라…. 따라서 이미 여러 해 패왕 항우를 괴롭혀 온 터라 결코 그와는 손잡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닌데도, 팽월은 선뜻 전군을 들어 한왕 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살피기만 했다.

그 무렵도 그랬다. 팽월은 마지못해 한왕의 본진에 군량 10만 곡(斛)을 보내 준 걸로 체면치레만 하고, 아직도 잘 가늠이 되지 않는 승패의 향방을 주의 깊게 헤아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고릉 싸움에서 크게 진 한왕이 팽월에게 사람을 보내 출병을 재촉해왔다. 이번에도 팽월은 위나라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다는 구차한 핑계로 출병하지 않고 버텼으나 왠지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래서 더욱 세심하게 변화를 살피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유성마가 달려와 알렸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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