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찰청장만 물러날 일인가

  • 입력 2005년 12월 30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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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영 경찰청장이 시위 농민 사망사건과 관련해 제출한 사표가 수리됐다. 그는 어제 사표를 내면서 “급박한 정치 현안을 고려해 통치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그러나 (이번 사건이)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거국적으로 뜻을 모아 평화적 시위문화를 꼭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법은 경찰청장의 임기를 2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이 중요한 자리라는 취지다. 하지만 경찰청장 임기제와 그의 정치적 도의적 책임 문제는 별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對)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허 청장도 경찰의 잘못을 인정한 이상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순리(順理)라고 본다.

문제는 경찰청장 사퇴 이후다. 일이 터지면 책임자의 옷을 벗기고, 그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넘어가선 안 된다. 폭력시위와 과잉 진압이 맞물려 돌아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과잉 대응을 유발한 측에서도 누군가 분명히 책임을 지고 사과하는 일이다. 노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시위대가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경찰차에 불을 지르는 폭동이 없었다면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농민 단체가 허 청장의 사퇴를 요구해 왔고, 결과적으로 이것이 받아들여졌다고 해서 시위대의 폭력이 면죄부를 받았다고 착각해선 곤란하다.

정치권도 반성해야 한다. 시위문화 개선이라는 본질적인 관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열린우리당이 단독국회를 운영해야 할 상황이 되자 민주노동당을 끌어들이기 위해 탄핵소추 운운하며 허 청장의 사퇴를 압박한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

본란에서 거듭 강조했듯이 평화적 시위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방법밖에 없다. 대통령의 사과와 경찰청장의 사퇴가 공권력의 위축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그동안 수없이 보아 왔듯이 불상사에 대한 책임 추궁이 두려워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떠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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