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마라도나와 위선자들

입력 2005-11-18 03:00수정 2009-10-0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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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디에고 마라도나의 이름은 안다. 가난 속에 자랐지만 축구 재능 하나만으로 세계를 열광시킨 아르헨티나의 영웅 말이다. 한때 마약에 빠졌던 그가 뉴스의 중심으로 부활했다. 이번엔 ‘신의 손’이 아니라 반(反)세계화의 독설을 통해서다.

이달 초 무역자유화를 촉구하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아르헨티나 방문에 그는 “부시 같은 인간쓰레기에 맞서자”고 외쳤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도 무역자유화와 신자유주의를 쳐부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 수만 명의 시위대가 시내 상점을 때려 부수는 것으로 화답했다.

딴 사람은 몰라도 마라도나 같은 세계화의 화신이 반세계화에 앞장서는 건 코미디 아니면 부조리극이다. 세계무대에서 공을 찬 덕에 세계적 스타가 되고 코카콜라 같은 세계적 기업과 계약해 해마다 1000만 달러를 벌었기 때문이다. 세계 축구소년들의 우상이면서 반세계화 투쟁을 펴는 건 ‘나는 성공했으되 딴 사람들은 따라오지 말라’는 심술인가, 혹은 위선인가.

마라도나와 반세계화주의자들이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언급하진 않았어도 이들의 주장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수업용 반APEC 동영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세계화는 부자만을 위한 속임수이고 빈곤과 전쟁을 확대할 뿐이라는 내용이다.

반부시, 반미, 반신자유주의, 반자본주의, 반세계화 소리가 유독 남미에서 거센 것은 “당신들이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도 되레 가난해졌다”는 반감 탓이 크다. 마라도나의 조국은 1990년대 시장개혁의 모델로 불리다가 2001년 돌연 사실상의 국가부도사태까지 맞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추락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라 이를 왜곡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옳다. 페론의 포퓰리즘에 중독된 이 나라 정치인들은 재정 안정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를 무시하고 무책임한 퍼주기 정부지출로 재정적자와 부패를 자초했다. 금융자유화는 외면한 채 달러와 1 대 1 태환제를 고집해 해외발(發) 경제충격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아르헨티나 경제는 2003년부터 살아나는 분위기다. 반세계화 덕분이 아니라 거꾸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을 따라가서다.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민중을 되레 빈곤으로 이끄는 사람들의 심리구조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APEC 바로알기 공동수업’ 자료만 봐도 ‘APEC가 자유무역을 증진시킨다고 하는데 민중에게도 조금이나마 이득이 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에 ‘저들의 자유무역은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과 삶의 질과는 정반대로 움직여 왔습니다’라는 친절한 대답이 붙어 있다. 전교조는 제자들이 자유무역 대신 자급자족하는 주체적 삶을 살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미안하게도 1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세계화 자료에 따르면 이건 명백한 거짓말이다. 아프리카의 극소수 국가를 제외한 모든 나라는 자유무역으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는 실증적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글로벌시장이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과 기술혁신, 경쟁력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그 성공사례에 단골로 등장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물론 자유무역만으론 충분치 않다. 세계화의 낙오자도 생기게 마련이다. 국가의 ‘능력’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탈규제, 안정된 재정·금융정책이 뒷받침돼야 세계화의 혜택이 고루 돌아간다. 세계화에 뒤진 이들이 빨리 경쟁력 있는 일자리를 갖도록 ‘경쟁력 키워 주는 교육’을 하면 양극화 해소를 고민하지 않아도 빈곤은 줄어들 수 있다.

이런 진짜 개혁을 할 능력도, 의지도 없으면서 반세계화나 사회적 격차 해소만 부르짖는 것은 코미디이거나 위선일 뿐이다. 이젠 ‘국정 코미디’와 ‘위선 브리핑’에 반대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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