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동용승/남북경협 ‘발은 항상 땅에’

  • 입력 2005년 11월 1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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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북한 개성공단에서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달 28일 개소식을 가졌던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에서 남북한 기업인이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개성공단에서 경협을 논의하는 일상적인 만남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일부는 과거 제3국에서 이뤄졌던 남북 기업 간 협의가 처음으로 한반도 안에서 열렸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동안 남북 기업 간 협의는 베이징, 단둥 등 중국에서 수없이 있었다. 이런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번 첫 만남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남북 당국이 마련한 경협사무소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민간 기업들이 만났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자리를 만드는 데 무려 1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992년에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을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인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 정보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북한은 예외다. 북한에 대한 정보는 어떤 내용이든 희소가치가 있을 만큼 북한은 통제된 사회다.

기업으로서는 사업을 협의하려고 하는데도 상대편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숙지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측과 제3국에서 만나 경협을 논의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너무 높았다. 한편에선 개성공단이다, 금강산 관광이다, 철도 연결이다 하면서 대규모 사업들이 진행되는데 다른 한편에선 상대편이 누군지도 모른 채 사업을 추진해 온 것이다. 기업인들은 평양행 고려항공 비행기에 올라타는 순간 “이제부터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민간 차원의 남북경협은 1989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북한은 1990년대 중반까지 남북경협 자체를 부인했다. 1992년 김달현 전 정무원 부총리가 서울에 왔을 때의 일이다. 김 전 부총리는 남한의 주요 사업장을 방문하면서 연방 북한에 투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한 남한 기업인이 “밀린 교역대금부터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자 순식간에 표정을 바꿨다. “남쪽과 거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는 남북 중간에 제3국 기업을 내세운 간접 교류가 주를 이뤘기 때문에 가능했던 말이다.

그 후 북한은 고려민족발전협의회(고민발), 광명성총회사(광명성), 삼천리총회사(삼천리),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대남 경협창구를 만들었지만 어느 것 하나 신뢰하기 힘들었다. 우리 기업들이 이런 환경을 이용해 북측의 불신을 키웠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한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에야 비로소 경협창구를 공식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족경제연합회(민경련)가 바로 그것이다. 얼마 전에는 내각 직속으로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를 만들어 대남 경협을 총괄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기업들이 북측과 교류를 하고 싶어도 어디에 가서 논의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막연했다. 기업 광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홈페이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경험에 의존해 먼저 북한에 들어간 기업들로부터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 추진했다.

얼마 전 남북경협에 참여한 기업 대부분이 적자라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당연한 결과다. 높은 수익에는 높은 위험이, 낮은 수익에는 낮은 위험이 따르는 것이 경제의 일반원칙이다. 그런데 북한 사업은 다르다. 낮은 수익에 높은 위험이다. 낮은 수익이라도 보장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말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사무소를 개설하고, 그곳에서 민간 기업들이 경협을 협의했다는 사실은 큰 진전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드디어 민간 기업도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든든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이런 일에 주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경협이 과대 포장돼 있기 때문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는 걸음마 수준인데 겉모습만 보고 어른 취급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수천억 원 규모에 달하는 대규모 경협 사업이 논의될 때마다 이런 말이 먼저 떠오른다. “이상은 높게, 그러나 발은 항상 땅을 딛고 있어야 한다.”

동용승 객원논설위원·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seridy@s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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