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술자리 폭언 사건’에 취한 國監

  • 입력 2005년 9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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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땅콩이랑 과일 접시를 옮기면서 분위기가 산만했는데…. 폭탄주는 맥주잔에서 알잔만 빼 마셨고….”(25일 한나라당 주성영·朱盛英 의원의 기자간담회)

“우리는 밤 11시까지만 술을 마셨는데… ××라는 욕설 외에 ×××이라는 욕도 나왔다.”(28일 열린우리당 법제사법위원 기자간담회)

국정을 엄정히 감시해야 할 국정감사가 진행 중인 요즘 국회 안팎은 술자리와 욕설, 성희롱 얘기로 시끄럽다. ‘대구 술자리 성폭언 사건’이 국회의원과 검사의 ‘진실게임’으로 변했다가 다시 여야의 정치공작 공방으로 비화되면서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검찰이 대구지검 검사의 부적절한 언행을 인정하고 사과했는데도 사건은 일단락되기는커녕 정치공작 논란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 사건이 대구 지역에서 실시되는 10·26재선거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재·보궐선거만 아니었으면 술자리 해프닝으로 끝났을 수도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국회 관계자들도 “시작부터 끝까지 정치권에 대한 냉소와 불신을 키우는 요소들로 가득 찬 사건”이라며 혀를 찼다.

국회의원과 피감기관 간부들의 부적절한 술자리, 148만 원의 술값을 누가 냈느냐는 논란, 의원의 폭언과 만취한 검사의 성희롱 발언, 이를 해명하기 위해 열린 민망한 기자간담회, 그리고 공인들의 책임 떠넘기기….

사실 여부가 확인되기도 전에 주 의원을 성급히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한 열린우리당은 검찰이 사과하자 뒤늦게 “그래도 주 의원이 폭언한 것은 맞지 않느냐”며 공격 방향을 슬쩍 바꿨다.

반격에 나선 한나라당은 급기야 주 의원과 술집 여주인의 통화내용 녹취록을 정치공작의 증거로 꺼내들었다. 이 녹취록은 주 의원이 자신의 통화내용을 녹음해 만들어낸 것이다.

시끄럽고 저질적인 공방이 계속되는 동안 방대한 국정감사 자료에는 먼지만 쌓여간다. 28일 이 문제 때문에 열린 법사위 간담회에서 열린우리당 최용규(崔龍圭)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아, 졸렬하다. 그만합시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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