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독자인권회 좌담]연예인 사생활 보도 본인동의 필수

  • 입력 2005년 9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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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유의선 위원. 안철민  기자
왼쪽부터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유의선 위원. 안철민 기자
《연예인의 은밀한 신체 부위나 사생활은 언론이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 수 있을까. 그룹 ‘코요태’ 멤버인 인기가수 신지(24)가 한쪽 가슴을 드러낸 채 댄스그룹 ‘NRG’ 멤버 이성진(28)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사진이 최근 인터넷 연예게시판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누리꾼(네티즌)들 사이에 큰 논란이 벌어졌다. 두 연예인의 소속사들이 즉각 합성사진이라고 주장하며 ‘악의적 사이버 테러’로 규정해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발표하자 문제의 사진은 사이버 공간에서 사라졌다. 이어 일부 신문들도 두 연예인의 실명을 밝히며 이 사건을 보도했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21일 본사 회의실에서 ‘신체 노출 사진 공개와 연예인의 인권’을 주제로 좌담을 갖고 연예인의 신체 노출 관련 보도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보도자세 등을 짚어봤다.

사회=육정수 본보 독자서비스센터장》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연예인의 신체 노출 사진이나 은밀한 성생활 장면 등을 본인 동의 없이 보도해도 괜찮을까요. 보도의 요건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지요.

▽김일수 위원장=연예인은 사생활이 쉽게 노출되고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보통사람과는 달리 평가해야겠지요. 진실에 바탕을 둔 일정한 사실을 국민의 알 권리와 엔터테인먼트 차원에서 공개하는 경우와 내밀한 사생활에 관한 사실을 유포하는 경우 등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겠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본인 동의 없이도 면책이 가능하겠지만 후자의 경우 비록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보호받아야 할 부분이 있는 만큼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합성사진처럼 진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더구나 악의적일 경우 연예인이라 해도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실의 경우 본인 동의를 얻어 보도하면 갈등의 소지를 없애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되겠지요. 당혹스러운 장면일수록 진실성과 본인의 동의에 유념하는 보도 자세가 바람직합니다.

▽유의선 위원=이번 사건은 표현의 자유 문제와 인터넷의 익명성, 조작 용이성, 쌍방향성, 대중의 호기심이나 관음증 등이 연결돼 있는 사안입니다. 달리 말하면 알 권리와 사생활의 영역을 어느 정도의 지분으로 나눌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지요. 연예인도 공인(公人)으로 간주되니 상당한 수준의 사생활 침해는 감수해야 합니다. 즉 ‘합리적인 공공 관심사’는 알 권리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진실이라 하더라도 성생활, 질병 등에 관한 당혹스러운 사실의 영역은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보도 내용이 허위라면 애초부터 뉴스 가치가 없는 것일 뿐 아니라 합리적인 공공 관심사로 볼 수도 없습니다.

▽이지은 위원=사생활은 진실이든 아니든 본인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게재됐다면 원칙적으로 엄격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헌법도 사생활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고 관련 법률도 있지만 규제가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맹점으로 지적되는 실정이니까요. 갈수록 합성기술이 발달하고 파급력이 커지면서 심각한 사태로 진전될 수도 있으니 법 제도의 정비와 보완이 시급합니다.

▽최현희 위원=소속 기획사들의 발표에서도 확인됩니다만, 합성사진을 올리는 행위 자체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누리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행위도 수사의 대상이 되고 적발되면 법적 제재를 받는 ‘범죄 행위’라는 점을 계도한다는 의미에서라도 보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나 진실된 내용이라면 연예인의 사생활은 보도가 폭넓게 용인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김 위원장=연예인에 대해서는 일반인의 관심이 높으니까, 예를 들면 노출이 심한 옷차림으로 행사장에 나왔을 때 의도적인 각도에서 찍는 ‘훔쳐보기’식 영상을 만들어 보도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이 경우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힌다는 측면에서 용인될 수도 있겠습니다. 진실한 사실이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수준이라면 ‘황색 저널리즘’이 가진 사회적 수요의 충족 측면에서 ‘눈요기’로 보도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당혹스러운 사실일 경우에는 본인의 동의를 받아서, 필요하다면 반론의 기회를 제공하고 보도하면 되겠지요.

▽최 위원=공공장소에서 접근과 촬영이 쉬운 상황이라면 보도를 한다고 해서 인권 침해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깨 끈이 흘러내려 가슴이 드러날 수 있는데도 본인이 이에 대비하지 않았다면 공개해도 무관하다고 봅니다. 스스로 사생활을 보호할 의지가 없었다고 봐야 할 테니까요.

―이 사건을 보도한 인터넷 매체나 신문의 자세에 문제는 없었는지, 바람직한 자세는 어떤 것인지 제시해 주시지요.

▽유 위원=포털 사이트에 횡행하는 ‘황색 저널리즘’ 행태를 확인하면서 가슴을 치고 싶었습니다. ‘신지 가슴’이라고 키워드를 넣고 클릭했더니 제목마다 ‘신지 가슴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 내지 관음증을 유발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상업성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고 하겠지만 우리 모두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사회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태는 자중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최 위원=유 위원 말씀처럼 상당수 인터넷 매체들은 누가 접속하든 ‘신지가 정말 그랬구나’ 하고 받아들이게끔 궁금증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일관했더군요. 반면 종이신문들은 사실 전달과 함께 반론을 싣는 등 대체로 피해자 측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위원=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으로 부상했다고 하지만 인터넷 공간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한심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작은 움직임이나마 누리꾼들의 자정운동이 눈에 띄어 기대를 걸어 보기도 합니다. 의식 수준이 인터넷 기술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하는 만큼 교육을 통한 개선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누구든 자기 자신도 사이버 공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인터넷 공간이 건강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참석자 명단>

김일수 위원장(金日秀·고려대 법대 교수)

유의선 위원(柳義善·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이지은 위원(李枝殷·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최현희 위원(崔賢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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