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청와대에서도 ‘무두일’이 화제였다. YS 정권 때의 일화(逸話) 하나. 한 기자가 L 수석비서관에게 말했다. “내일 대통령이 해외 출장을 떠나면 완전한 자유의 몸이네요. 그동안 푹 쉬세요.” 수석비서관이 맞받았다. “무슨 소리예요. ‘무두일’인데 더 꼼꼼하게 청와대를 챙겨야지. 언제 대통령에게서 전화가 올지 모르는데.” 당시 청와대의 대부분 비서관에게 ‘무두일’은 ‘해방의 날’이 아니라 더욱 부담스러운 날이었다.
▷‘무두일’에 사고가 난 경우도 있다. 참여정부 첫해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 상황실에 전화를 걸었으나 당직 근무자가 잠을 자는 바람에 연결되지 못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나라 밖에선 곧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나라 안에서는 화물연대 파업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24시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작동해야 하는 대통령과 비서실 간의 지시·보고 시스템이 멈춰 버린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이번 중남미 순방 기간에는 청와대의 ‘뒷문’이 열리지 않도록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엊그제 출국 비행기 안에서 “대통령이 나가니 나라가 열흘은 조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정론(聯政論) 등 대통령의 숱한 정치적 발언에 지칠 대로 지친 국민에게는 ‘참을 수 없는 대통령 말씀의 가벼움’이 오히려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바라건대 대통령 귀국 후에도 ‘나라의 조용함’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날이면 날마다 ‘무두일’ 같으면 좋으련만.
송 영 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