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땀받이와 란닝구’

  • 입력 200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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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할인매장에 갔다. 집 밖에선 ‘리포터(reporter)’지만 집에서는 ‘포터(porter)’ 노릇을 가끔이라도 해야 가사에 무관심한 ‘간 큰 가장’이란 소리를 안 듣는다.

카트를 밀고 다니다 남성용 속옷 진열대의 ‘△△△ 땀받이’라는 상품에 눈길이 갔다. 호기심에 살펴보니 국내의 한 내의 제조업체가 북한에서 생산한 반팔 속옷이었다.

‘정말 북한답게 이름을 지었군. 좀 더 세련된 이름을 붙일 순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국내에서도 ‘러닝셔츠(running shirt)’라는 일본식 영어나, 여기서 비롯된 속칭 ‘란닝구(ランニング)’ 외엔 마땅한 표현이 없는 것 같았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더니 국산과 비슷해 보이는 품질에, 가격이 훨씬 싼 것을 보고 여러 벌의 ‘땀받이’를 사고 말았다. 앞으로 한참 동안 남북경협의 현실을 매일 피부로 느끼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최근 몇 년간 남북 교역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지난해 교역액은 6억9700만 달러로 5년 전(3억3300만 달러)의 배가 됐다. 남한의 기술과 자본으로 북한에서 물품을 생산하는 위탁가공 교역도 늘어났다. 7월의 대북 위탁가공 교역액(1만6162달러)은 6월(1만1435달러)보다 41.3%나 증가했다. 이 같은 위탁가공 품목의 약 90%는 섬유류다.

북한의 노동자들이 남한 기업의 관리하에 ‘땀받이’를 만드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그들은 ‘땀받이’, 아니 ‘란닝구’를 적셔 온 남한 산업 역군들의 땀과 노고를 알고 있을까.

1960년대 이후 남한의 경제개발 과정에선 한여름 공장과 작업장, 논밭에서 근로자들이 웃통을 벗어부친 채 ‘란닝구’ 차림으로 땀 흘려 일하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교실에 선풍기도 없던 그 시절 남자 중고교에선 아예 ‘란닝구’ 바람으로 수업을 듣기도 했다.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그렇게 땀 흘려 일하고 공부한 것이 결국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

북한이 다양한 남북경협을 통해 남한의 기술뿐 아니라 경제개발 경험과 시장경제의 원리도 진지하게 배웠으면 좋겠다. 생존을 위해 남한의 협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인지 오히려 남측 기업에 혜택을 베푸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북한 경제의 미래는 없다.

북한이 자신들과 친분 있는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부회장의 교체를 문제 삼아 현대의 금강산 관광객 규모를 일방적으로 축소하고 백두산 관광 협상마저 거부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밑지는 장사’임에도 북한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현대가 그런 황당한 경우를 당한다면 도대체 어느 기업이 대북 경협에 매력을 느낄지 의문이다.

‘땀받이’ 외에 북한에선 팬티를 뭐라고 부르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경협에 속도가 더 붙으면 좋으련만 핵과 미사일 개발 외엔 여념이 없는 듯한 북한을 보면 전망이 썩 밝지만은 않다.

북한이 개혁을 단행해 장차 북한산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자동차 등을 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꿈일까. 중국, 베트남은 과감히 시장경제를 도입해 천지개벽(天地開闢),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발전을 이루고 있다. 북한이 표방하는 강성대국은 말만으론 되지 않는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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