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8년 슈퍼 301조 美상원 통과

  • 입력 2005년 8월 3일 03시 14분


코멘트
탄탄한 역삼각 몸매에 망토를 입고 날아다니는 ‘슈퍼맨’이 아닐 바에야 법 조항에 무엇 때문에 ‘슈퍼’라는 말이 붙었을까. 그것은 미국이 불공정 무역에 보복할 수 있도록 한 기존의 통상법 301조(일반 301조)를 한층 강화한 데서 나온 별명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슈퍼 301조’는 ‘람보 301조’라는 별명을 얻으며 슈퍼 강대국 미국의 자기중심적 자세를 빗대는 상징으로 즐겨 사용돼 왔다.

1988년 8월 3일, 이 조항이 포함된 ‘88종합통상법안’이 미국 상원에서 통과됐다. 앞서 5월 이 법안을 거부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일부 수정된 법안을 거부하지 않겠다고 미리 밝혀 이날은 ‘슈퍼 법안’의 탄생일이 됐다.

동아일보는 당시 해설기사에서 ‘미, 자국시장 보호 무기 총동원…파는 만큼 개방하라 교역국에 압력’이라는 제목으로 새 법안의 의미를 설명했다. “안보와 동맹관계를 우선했던 종래 미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 통상이라는 요인이 같은 비중으로 올라서게 됐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슈퍼 301조가 탄생함에 따라 미국 기업이 다른 나라의 불공정한 무역행위로 피해를 보았다고 청원하면 미 무역대표부는 이를 받아들여 3년 내 해당국이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반드시 보복조치를 발동하도록 규정됐다. 미국의 기업 하나가 상대국 정부와 1 대 1로 겨룰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셈이다.

‘자유무역 정신에 위배된다’는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미국이 이렇게 나온 데는 1980년대 이후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데 따른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 일본 상품에 밀려 폐업하는 제조업체가 늘어나면서 실업사태가 도시 근로자들을 강타했다. 근로자층에 기반을 둔 민주당은 ‘경쟁국들이 덤핑으로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며 강경론을 주도했다.

한시입법이었던 슈퍼 301조는 1988∼1990, 1994∼2002년 운용된 뒤 사라졌지만 2004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가 “슈퍼 301조를 부활시키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다시 주목받았다. ‘덜 일방주의적인 케리가 왜…’라며 의아하게 여긴 이도 많았지만, 부시 부자(父子) 대통령 재임기간보다 빌 클린턴 재임 시절 한미 통상마찰이 더 많았던 점을 기억한다면 쉽게 이해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