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8년 황룡사 9층목탑 심초석 발굴

  • 입력 2005년 7월 30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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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중반 이후, 신라 수도 서라벌(현재 경북 경주시)의 상징물은 단연 황룡사 9층 목탑이었다. 높이 80m. 서라벌 한복판에 우뚝 솟아오른 이 탑은 신라인들의 정신적 지표였다. 신라인들은 이 탑을 바라보며 신라 땅이 불국토(佛國土)가 되어 영원히 번성하기를 기원했다. 그건 서라벌 창공에 우뚝 솟은 호국 이념의 푯대였다.

황룡사에 9층 목탑이 세워진 것은 선덕여왕 때인 645년.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승려 자장의 제안에 따라 백제의 장인 아비지의 기술 지도를 받아가며 3년 만에 탑을 완성했다. 9층은 중국 일본 등 주변의 아홉 나라를 물리치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황룡사는 신라 최대의 호국 사찰이었고 황룡사 9층 목탑은 황룡사의 핵심, 호국 사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 탑은 거대한 규모 때문에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완공 직후부터 벼락을 맞는 일이 많았다. 718년 벼락으로 큰 피해를 봐 2년 뒤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해야 했고, 9세기 들어 탑이 기울기 시작하자 872년에 헐고 아예 다시 짓기도 했다.

이 탑이 사라진 것은 고려 때인 1238년. 몽골의 침입을 받아 황룡사와 함께 불에 타 주춧돌만 남게 됐다.

1978년 7월 30일, 이 목탑이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탑의 심초석(心礎石)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심초석은 목탑을 지탱해 주는 중앙 기둥의 주춧돌을 말한다.

화강암으로 된 심초석은 동서 약 435cm, 남북 약 300cm, 두께 약 120cm에 무게는 30t.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은 대한통운 포항지점 소속의 100t급 크레인을 동원해 이 심초석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심초석 밑에서 금동 불상, 각종 금동 장신구와 청동 생활용품, 유리구슬 등 신라인의 종교 의식과 일상생활을 보여 주는 귀중한 유물 3000여 점을 찾아냈다.

그러나 심초석 윗면의 구멍에 안치돼 있던 사리(舍利)와 사리구(舍利具)는 이미 도난당한 뒤였다. 1964년 누군가 사리공을 덮고 있던 돌을 들추고 사리구를 훔쳐간 것이었다. 2년 뒤 범인을 잡고 사리구를 되찾긴 했지만, 황룡사 목탑의 수난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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