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속의 오늘]2003년 쿠바 재즈거장 세군도 사망

  • 입력 2005년 7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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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토 세도르에서 마르카네로 가고 있네/…당신에 대한 사랑을 감출 수 없어/입엔 벌써 군침이 고이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가사는 연인을 만나러 걸음을 재촉하는 청년의 들뜬 연가(戀歌)같지만, 가락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사랑을 회고하는 듯 구슬프다.

전 세계에 쿠바 음악의 건재를 알린 노래 ‘찬찬(Chan Chan)’을 짓고 부른 사람은 아흔이 넘은 쿠바의 재즈 거장 콤파이 세군도였다.

재즈 밴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였던 그가 2003년 7월 14일 95세로 숨졌을 때 수도 아바나에서는 수백 명이 장례식 행렬을 뒤따르며 그를 기렸다.

세군도는 10대 때부터 낮엔 담배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바에서 연주를 하며 아프리카와 스페인의 선율이 어우러진 쿠바 재즈를 익혔다. 7현 기타 ‘아르모니코’를 발명했고 1940, 50년대에는 쿠바를 대표하는 재즈 음악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61년 쿠바혁명으로 모든 것이 바뀌고 만다. 피델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선 뒤 공산주의 이념을 담은 포크 음악이 주류를 이룬 대신 전통 쿠바 재즈는 밀려났다. 아바나의 공연장들도 문을 닫았고 세군도는 30여 년간 담배공장 노동자, 이발사 등으로 전전했다.

그렇게 나이 아흔이 될 무렵 예기치 않은 ‘구원’이 찾아왔다. 쿠바 재즈에 매료된 미국의 음악 프로듀서 라이 쿠더가 1996년 아바나에서 노장 음악가들을 찾아 나선 것.

세군도 등 일흔을 넘긴 노인 5명이 모여 6일 만에 녹음을 끝낸 앨범 한 장이 전 세계에 쿠바 음악 붐을 몰고 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들이 과거에 공연하던 클럽 이름을 딴 앨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불티나게 팔렸고 그래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빔 벤데르스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에서 세군도는 “내 나이가 아흔인데 여섯째를 낳으려는 중”이라며 시들지 않은 정열을 과시한다. 수십 년의 억눌린 세월을 보냈건만 맺힌 구석 없이 경쾌하고 진솔하다.

다큐멘터리에 찍힌 아바나 길거리에는 ‘우리에겐 꿈이 있다’는 빛바랜 문구가 걸려 있다. 아흔이 넘도록 솟아오르는 영감을 잃지 않았던 세군도의 ‘장수 비결’은 그 자신이 곧잘 말하던 ‘양고기 수프와 한 잔의 술’ 대신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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