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대근]1.15 쇼크와 파파 쿼터제

  • 입력 2005년 6월 17일 0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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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를 보기 위해 1억 원을 썼다.” 7, 8년 전 은행 지점장에서 물러난 어느 은퇴자가 혀를 차며 고백했다. 사연은 이렇다. 이따금 눈치를 주었는데도 며느리를 본 지 3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더라는 것이다. 기다리다 못해 올해 초 외아들 내외를 불러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아이를…” 하고 설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별로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대답하기에 “그럼 내가 1억 원을 주지”라고 말했는데, 지난달 임신 소식을 전해왔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이 손자를 기다리는 마음은 한결같다. 하지만 그 마음을 헤아려야 할 젊은 부부들은 딴판이다. “직장에 다니면서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힘들다”며 출산을 망설인다. 대(代)를 잇는다는 말이 통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기혼여성의 절반이 ‘반드시 자녀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인구가 줄어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올해 4829만 명인 우리나라 인구는 2020년 4995만 명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해 2050년에는 4235만 명으로 뚝 떨어질 것이라고 통계청은 추산한다.

더 실감나는 통계도 있다. 여성 1명의 평균 출산아 수(합계 출산율)가 1960년대 6명에서 2002년에는 1.17명으로 떨어졌다. 2003년 1.19명으로 미미한 회복 기미를 보였으나 지난해 다시 1.15명으로 하락했다는 추계(推計)가 나왔다. 이상적인 인구구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는 2.1명의 절반을 겨우 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7명)보다도 훨씬 낮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가 걱정한 인구폭발론과는 정반대의 인구감소 위기다. ‘1.15 쇼크’라고 할 만하다.

고령화와 저출산이 불러올 문제로 흔히 저성장을 꼽는다. 노동력과 소비의 감소, 노년층 부양비용 증가 등이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경제적 부작용이다. 이 정도라면 그래도 괜찮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복지에 의지하는 나이 든 세대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활력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젊은이들조차 도전과 모험을 기피하는 ‘죽은 사회’를 우려한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지금 인구학적으로 균형 잡힌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여성부는 엊그제 여성가족부로의 확대개편을 앞두고 ‘파파 쿼터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1년인 육아휴직을 연장해 늘어난 기간을 아버지가 ‘의무적 권리’로 사용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남자에게도 의무휴가를 준다고 출산계획을 세울 부부가 얼마나 될까. 자리를 오래 비우면 내 책상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데 말이다. 그보다는 돈이 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동네마다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어린이 집’을 짓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지 않을까.

이제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인구의 질(質)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면 당연히 획기적인 장려책이 나와야 한다. 그야말로 한국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생각할 때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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