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민 칼럼]이제 프로에 자리 양보할때

  • 입력 2005년 6월 8일 0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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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는 순수하고 겸손할 때 아름답다. 아직 미숙하지만 언젠가는 프로처럼 성숙할 수 있다고 믿는 아마추어는 사랑을 받고, 실수도 관대하게 용납된다. 그러나 “아마추어일수록 구태와 시류에 덜 물들었으니 태도가 공평무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풍부하다. 그러니 오히려 아마추어가 희망이다”라고 말하는 청와대 인사는 그 교만성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이스라엘 국민들로부터 대통령 제의를 받았던 아인슈타인이 “나는 정치에는 아마추어”라며 한사코 프로 정치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것은 자신의 태도가 공평무사하지 못해서가 아니고 아이디어가 모자라서도 아니다. 황우석 교수가 연구실에서는 세계 정상의 프로지만 과학정책을 만드는 자리에서는 줄기세포 분야에서만큼 전문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어렵다.

청와대 인사가 언급한 ‘구태와 시류에 물든’ 존재들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것이 공무원들을 지칭하는 말이라면 이는 공직에 인생을 걸고 성실하게 살아온 프로 공무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폭언이다.

물론 출신만으로 아마추어와 프로를 가릴 수는 없다. 누구나 새 자리에서는 아마추어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정을 운영하는 막중한 자리의 인사가 집권 후반기를 맞은 이 시점까지 아마추어 태를 못 벗어 심지어 집권여당에서조차 질타 받을 정도라면 국민은 그들이 내놓는 정책에 마음이 평안할 수 없다. 이른바 아마추어들이 ‘공평무사한 태도’와 ‘풍부한 아이디어’로 이끌어 온 국정의 성적표는 지금 어떤 수준인가.

아마추어가 설계한 건물은 제 아무리 프로 건축기술자라도 제대로 짓기 어렵다. 청와대의 아마추어 위원들이 설계해 ‘하달’하는 정책을 놓고 경제부처 프로 집행자들이 얼마나 난처해하는지를 위에서는 잘 모르는 모양이다. “청와대와 내각이 토론을 통해 합의한 것”이라지만 권세의 발판 높이가 다른 직업 관료들의 낮은 목소리가 토론에서 얼마나 반영됐을까. 경제부처 프로들은 특히 개성 강한 일부 아마추어들이 내놓는 평등주의적 정책들을 가장 곤혹스러워 한다.

집권 초기 강성노조를 옹호하던 노사정책, 서울대 폐지론까지 거론되는 교육정책, 강남 죽이기식 감정적 부동산정책, 수도권 축소를 전제로 한 국토균형개발정책, 자영업 진입규제 위주의 중소기업대책, 신문시장 점유율까지 제한하는 언론정책 등 아마추어들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수많은 평등주의적 정책 가운데는 해당 부처에서조차 고개를 흔드는 것이 많다. 그래서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배고픈 것을 해결한 역사상 최초의 지도자였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평등주의’를 통해 배 아픈 것을 고치겠다고 나선 최초의 지도자라는 말을 듣는다.

배 아픈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상대적 빈곤감에서 기인하는데 과연 정부가 그것을 근원적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어설픈 평등주의는 압력밥솥에서 똑같이 익는 잡곡들처럼 전 국민을 규격화하고 표준화할 뿐이다. 경제학의 기본상식이지만 애덤 스미스는 ‘보다 잘살려는 인간의 이기적 욕심이 경제발전을 위한 가장 훌륭한 자원’이라고 했다.

인간의 탐욕을 잘 이용해 부강하게 된 대표적 국가는, 현 정권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미국이다. 평등주의 환상 때문에 고생하는 표본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정부가 철마다 국민 세금으로 ‘선물’을 주어가며 짝사랑하는 북녘 평양의 생활상은 그릇된 평등주의에 빠질 때의 우리 모습일 수 있다. 그때 우리는 또다시 피골상접한 몰골로 제2의 박정희가 나타나기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마추어 국가를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다.

평등하게 갖는 것보다 평등하게 존중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정책을 위해 이제는 프로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때다.

이규민 경제 대기자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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