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과 함께 ‘나라의 길’을 찾겠습니다

  • 입력 2005년 3월 31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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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가 오늘 창간 85주년을 맞았다. 국권(國權) 잃은 시대의 우리 글 신문으로서 ‘민족의 표현기관’을 자임하고 ‘민주주의와 문화주의’를 제창했던 창간정신을 우리는 되새기고자 한다. 본보는 1920년 창간된 해부터 1936년 사이 일제(日帝)에 의해 네 차례나 무기정간 당하고, 1940년 8월 10일 끝내 강제 폐간됐다. 겨레에 한 줄기 빛이고자 했던 동아일보의 고난은 엄혹한 식민지시대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광복 후 복간된 동아일보는 대한민국 수립과 반(反)독재 민주화, 시장경제 실현과 국리민복 증진이라는 소명에 부응하고자 부단히 힘써왔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망국과 독재의 시대를 거치면서 정론직필(正論直筆)을 지키지 못했던 과거도 있었음을 부끄러워하고 자성(自省)한다. 우리는 굴곡진 역사 속의 영욕(榮辱)을 돌아보면서 다시 창간정신을 가다듬고 독자와 국민과 미래 앞에 서고자 한다.

올해는 을사늑약 100주년, 광복 60주년의 해다. 일본의 독도 도발과 과거사 왜곡은 ‘늑약의 악몽’이 끝나지 않았음을 일깨우고, 남북을 둘러싼 현실은 광복이 미완(未完)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는 격랑에 휩싸여 있다. 대한민국 정체성의 현주소를 묻게 하는 ‘문화혁명적 흐름’이 있고, 동북아질서의 재편을 둘러싼 도전과 응전이 소용돌이친다. 나라를 통째로 휩쓸 것 같은 격랑은 한 세기 전의 격동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은 남북분단을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왔다. 남과 북의 ‘적대적 의존관계’ 속에서 남쪽은 경이적인 압축성장을 이룩했지만 경제발전은 민주화 욕구와 필연적으로 충돌했다.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은 절차적 민주주의 확립의 분수령이 됐다. 하지만 한국사회에 내재한 전(前)근대적 가치와 관행, 시대착오적인 이념 실험 움직임, 끈질긴 지역분할의 정치구도는 자유민주주의 완성에 더 많은 진통을 요구하고 있다.

▼獨善 허용하지 않는 격랑의 시대▼

노무현 정부의 출범은 새로운 가능성과 또 다른 불안의 ‘동시 출발선’이었다. 노 대통령이 ‘제왕적(帝王的) 대통령’의 권위주의에서 탈각하려 하고, 정경유착과 부패의 사슬을 끊으려 하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 ‘시대적 가치’를 독점하려 하고, 역사발전단계 중의 산업화시기를 ‘부정하고 청산해야 할 기간’으로 간주하는 독선(獨善)이 충돌과 분열의 상처를 깊게 했다. 주류(主流) 교체의 욕구가 지나치게 표출돼 국정의 안정성을 흔들고, 정치 혼란과 정책 표류와 사회 갈등을 증폭시켰다.

사회 속의 이념 편향, 이념 과잉은 안보와 경제의 불확실성을 심화시켰다. 관념적 친북반미(親北反美), 국부 증대를 저해하는 반(反)기업 정서와 분배주의, 국가경쟁력 위기를 재촉하는 하향평준화식 평등주의 등이 그것들이다. 이런 이념적 지향이 기존 가치에 대한 파괴증후군과 맞물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기류마저 낳고 있다. 한국사를 자학(自虐) 또는 폄훼하거나 이를 부채질하는 행태가 교육 현장에까지 번지는 것도 이른바 신주류의 독선적 가치 지향과 무관하지 않다. 건전한 변화 욕구를 왜곡하는 문화혁명적 흐름을 계속 확대재생산한다면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국가 사회적 위험이 경제난 이상의 것이 될 우려가 크다.

이를 바로잡는 첫걸음은 역사를 부정과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발전적 계승과 승화의 교재로 삼는 일이다. 과거사의 명암(明暗)에서 교훈을 찾는 것은 옳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은 어제의 피땀이 있었기에 존재한다. 국력신장도, 민주발전도, 정권교체도 이 나라를 가난으로부터 탈출시킨 경제 도약을 이뤘기에 가능했다. 한 시대의 개발독재도, 자본의 독과점도 당시의 조건과 상황에서는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해 유효한 측면이 있었다. 과거에 대한 일방적 부정이 아니라 버릴 것과 계승할 것을 슬기롭게 분별하는 리더십과 국민적 지혜를 통해 더 반듯한 나라, 더 튼튼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건강한 韓國 위해 고민하는 신문▼

동북아질서 재편의 급물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노 대통령은 한국의 균형자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주변 강대국들과의 역학관계를 꿰뚫어보고, 치밀한 전략과 확고한 방향타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균형자론(論)은 자주국방론과 함께 국민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할지는 몰라도 냉정하게 말해 공허하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행여 노 대통령이 국내 정치에서 보여 온 것처럼 포퓰리즘적 발상으로 외교 문제를 다루려한다면 이에 따른 시행착오가 국내 문제에 비할 수 없는 국익의 손상을 초래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지금 한미동맹은 급속하게 이완되고 있다. 한국에게 북한은 ‘적이자 동족’이라는 이중성이 있는 만큼 북핵 문제를 세계전략의 일부로 인식하는 미국과 이견(異見)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한미동맹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릴 경우 우리나라는 ‘동북아질서의 균형자’가 아니라 ‘동북아의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다. 이것이 국제질서의 냉혹한 현실이다. 미일동맹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어느 주변 강국과도 확실한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어떤 정권도 국가와 국민의 이익, 즉 국익보다 정권의 이익을 상위(上位)에 두어서는 안 된다. 개혁은 혁명이 아니라 조용한 혁신과 개선이어야 한다. 보수(保守)해야 할 가치까지 파괴하는 것은 진정한 진보(進步)가 아니다. 국익이 걸린 문제들을 거칠고 조급하게 임상실험하려 해서는 국운(國運)의 쇠락을 막기 어렵다. 세계화 속의 무한경쟁과 미국 단극(單極)체제의 국제역학 속에서 어떤 길을 걸어야 나라의 안전과 국민의 행복을 지켜낼 수 있을지, 냉철하고 현실적인 눈과 실용적인 정책으로 국가 역량을 모아야 한다.

동아일보는 나라 안팎의 격랑과 무거운 국가 과제들을 직시하면서, 한국이 나아갈 올바른 진로(進路)를 국민과 함께 찾고자 한다. 언제나 당대 권력의 일탈(逸脫)을 감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며, 다양한 의견을 소통시켜 국리민복에 부합하는 중심 가치를 세우려 한다.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배격하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실현에 기여하면서, 남북 평화통일의 대도(大道)를 모색하고자 한다. 우리는 보다 건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더 고민할 것이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85년 동안 본보를 성원해준 국민에 대한 보답이자, 독자로부터 더 큰 신뢰와 사랑을 받으며 신문의 미래를 열어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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