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문홍]‘힐 차관보’에게 기대한다

  • 입력 2005년 3월 8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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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당사국 수석대표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북한이 6자회담에 무기한 불참하겠다고 밝힌 지난달 10일 이후 한국 미국 일본 중국 사이에 3자회담, 양자 접촉 등이 잇따라 열렸다.

특히 바빴던 사람은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가 아닐까 싶다. 최근에 힐 대사가 언론에 노출된 사례만 대충 훑어봐도 그렇다. 2월 초 미국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면담, 15일 아시아 소사이어티 주최 강연(워싱턴), 17일 한미중 수석대표 접촉(베이징), 18일 고려대 교우회 간담회, 22일 한국외국어대 총동문회 강연, 23일 부산 범어사 방문, 26일 한미일 수석대표 접촉(서울), 3월 3일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수석대표 면담(서울), 9일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일본 수석대표 면담(도쿄). 또 모레는 미 워싱턴에서 열리는 브루킹스연구소 주최 세미나에서 연설한다니 그야말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것 같다.

북핵 협상의 중심인 미국 측 수석대표이니 바쁜 건 당연하다고 볼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주한 대사와 수석대표의 직분을 겸하게 된 데서 비롯된 일시적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힐 대사에겐 무언가 남다른 게 있다.

힐 대사는 지난해 8월 서울에 부임한 직후부터 관심의 초점이었다. 무엇보다 역대 어느 대사보다 활발한 민간 접촉이 돋보였다. 힐 대사는 다양한 분야의 인사를 식사에 초대하고 인터넷에서 누리꾼(네티즌)과 대화하는 등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미 대사관 직원들은 요즘도 힐 대사가 요구하는 면담 대상자 섭외와 일정 조정에 쉴 틈이 없다고 한다.

힐 대사의 능수능란하고 자신감 넘치는 언어 구사도 화제다. 한미 간에 갈등이 불거질 수 있는 미묘한 사안을 외교적 표현으로 매끄럽게 넘어가면서도 할 말은 다 한다는 평이 따른다. 그 가운데 미국이 말하는 ‘북한 체제 변형(regime transformation)’의 의미를 놓고 논란이 있었을 때 그가 한 발언은 압권이다. 힐 대사는 “북한 정권의 행태 변화(change of regime's behavior)를 뜻한다”고 깔끔하게 비켜 갔다.

힐 대사가 얼마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로 공식 내정됐다. 자녀 학교 문제 때문에 당장 서울을 떠날 것 같지는 않지만 6월까지는 워싱턴으로 돌아가리라는 게 대사관 측 얘기다.

지루하게 끌어 온 북핵 문제에 ‘힐 차관보’가 돌파구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그가 강조해 온 대민 외교(public diplomacy)로 한미일의 여론을 조정하고, 뛰어난 협상력과 언변으로 북한과 중국을 상대한다면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도 그의 능력을 전폭적으로 신뢰한다고 했지 않은가.

그동안 미국의 대북(對北) 전략에도 비판의 소지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북한과 협상하려면 미국도 무언가 제시해야 하는데,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원칙만 고집했던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힐 차관보’는 미국의 새 전략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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