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74>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2월 2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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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여름[중하] 5월의 팽성은 더웠다. 중순 들어 연일 푹푹 찌는 더위를 피해 고목나무 그늘진 누각으로 옮겨 앉은 패왕 항우는 오랜만에 한가로운 마음으로 우미인과 마주 앉았다.

돌이켜보면 고달프면서도 분통 터지던 지난 몇 달이었다. 정월달에 제(齊)나라로 군사를 낼 때만 해도 패왕은 그렇게도 수렁 같은 싸움판이 자기를 기다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성양(城陽) 한 싸움에서 전영을 쳐부수고, 평원(平原) 백성들이 그 목을 바쳐왔을 때만 해도 제나라 정벌은 끝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전횡이 들고일어나 패왕으로서는 전혀 겪어보지 못한 고약한 싸움에 말려들고 말았다.

한왕 유방의 일도 그랬다. 3월에 한왕이 다시 움직인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패왕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패왕에게는 아직 한왕을 얕보는 마음이 남아있던 터라, 한왕이 그저 한번 허세를 부려보는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임진(臨晉)나루를 건넌 한왕은 위왕 표의 항복을 받고 은왕 사마앙을 사로잡아 기세를 올리더니 마침내는 제후들을 꼬드겨 팽성까지 넘보았다. 한왕이 팽성을 차지하고 있던 보름을 떠올리면 아직도 패왕은 피가 거꾸로 치솟는 듯했다.

다행히도 제나라에서 회군한 뒤의 일은 패왕의 뜻대로 되었다. 많지 않은 정병(精兵)으로 방심한 적의 대군을 급습하여 재빨리 승기(勝機)를 결정짓는다는 패왕의 전법은 잘 맞아떨어져, 제나라를 떠난 지 닷새 만에 수십만의 한군을 죽이고 팽성을 되찾았다. 제나라에 남아있던 초군 본진(本陣)도 다급한 철군에 따르기 마련인 희생 없이 팽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걸로 그 늙은 허풍선이에게 당한 수모는 깨끗이 씻었다….)

수수의 싸움에서 다시 10여 만의 한군을 물속에 몰아넣어 죽이고 나서 패왕은 자신의 군사적 재능에 스스로 감탄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범증은 패왕과 달랐다.

“대왕께서는 이제 겨우 잃은 것을 되찾았을 뿐입니다. 이제 천하가 걸린 싸움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을 뿐이니 방심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분발을 부추겼지만 패왕에게는 지나친 서두름으로만 여겨졌다. 한왕을 추격하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은 한왕에게 짓밟혔던 서초의 본거지를 보살피고 흔들리는 민심을 추스르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싸우다 버려두고 온 제나라의 움직임도 다시 서초를 비워두고 멀리 친정(親征)을 나서기에는 불안한 데가 있었다. 그래서 용저와 종리매에게 각기 3만 군사를 주어 서쪽으로 한왕을 뒤쫓게 하고, 다시 환초에게 1만 군사를 주어 그 뒤를 받치게 하고 자신은 팽성에 남았다.

패왕이 범증과 함께 도성에 남아 안팎을 보살피고 다독이자 팽성 성 안뿐만 아니라 흔들리던 서초 일대의 민심까지 빠르게 안정되었다. 한나라 쪽에 붙었던 제후들이 하나둘 서초(西楚)로 되돌아왔고, 한왕과 서초패왕 사이에 끼어 눈치만 보던 토호세력들도 다시 패왕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패왕의 자신감은 다시 크게 부풀었다.

한왕에게 항복했다가 가장 먼저 돌아온 왕은 패왕이 세웠던 한왕(韓王) 정창(鄭昌)이었다. 이어 새왕(塞王) 사마흔과 적왕(翟王) 동예도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패왕을 찾아와 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한왕에게 항복한 죄를 빌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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