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제성호]국회가 헌재를 통제하려는가

  • 입력 2004년 11월 1일 18시 24분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둘러싸고 여론이 분열되고 있다. 이를 그냥 방치했다간 ‘헌법수호기관’인 헌재의 권위가 심대하게 손상됨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 국회 헌재 등 헌법기관 상호간의 권력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하루빨리 관습헌법의 존부에 대한 법적 혼선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헌재 존중해야 법치주의 산다▼

우리나라는 성문헌법 국가다. 이는 ‘단일의 성문헌법전’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지, 오로지 성문헌법만을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 보자. 헌법 제60조 1항은 국회의 비준 동의를 요하는 중요한 조약을 열거하고 있다. 여기에는 영토변경에 관한 조약은 명시돼 있지 않다. 그러므로 불문헌법을 인정치 않으면 정부가 국회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임의로 매각협정(영토변경조약)을 체결해 독도를 일본에 할양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혹자는 이와 관련해 불문헌법을 인정치 않고 헌법 제60조 1항을 유추 또는 확대 해석해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어물쩍 넘어가려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 영토는 국민, 주권과 함께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3대 요소의 하나로 국가 기본법인 헌법에서 정해야 할 ‘헌법사항’이다. 만일 독도나 제주도를 제3국에 할양하려 할 경우 먼저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즉 영토변경의 동의에 관한 헌법절차(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과 국민투표에 의한 승인)가 선행될 경우에만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를 축소할 수 있다.

헌법조문 어디에도 언급이 없지만 우리 국가형태(국체)에 관한 가장 중요한 불문의 헌법규범은 바로 ‘대한민국은 단일국가’라는 것이다. 이 사항이 헌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고 해서 남북한의 정상이 만나 임의로 단일국가를 연방국가로 바꾸는 연방제 합의를 할 수는 없다. 그와 같은 합의는 국가정체성을 파괴 또는 변경시키는 위헌적 합의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북한과 연방(낮은 단계의 연방 포함) 추진을 위한 합의를 하려면 먼저 연방제가 가능한 방향으로 현행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처럼 명백히 우리나라에도 불문의 헌법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 비춰 관습헌법 규범을 부인하려는 측의 선동적 주장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서울이 수도라는 규범이 관습헌법인지 여부는 국민 대다수의 헌법적 확신을 고려해 헌법의 최종해석권자인 헌재가 결정할 사항이다. 일단 헌재의 결정이 나온 이상 불만이 있더라도 이를 존중하는 것이 헌법기관인 국회와 대통령이 할 일이다. 그래야 법치주의가 산다.

최근 헌재 결정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국회가 헌재 재판관에 대한 인사 청문회를 실시해야 한다거나, 법률가 외에 학자나 양식 있는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헌재의 인적 구성의 다양성 확보나 검증절차는 민주적 정당성 제고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국회의 입법권에 위헌적 법률의 제정권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 단계에서 ‘보복적 성격’을 갖는 헌재 통제입법의 추진은 헌재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위헌적, 반권력분립적 조치라 하겠다.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내용이어야 입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입법권 무소불위 권력 아니다▼

또한 입법권은 대한민국의 안위와 언론의 자유 보장 등 헌법 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어선 안 된다. 이를 고려해 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 언론개혁법안 등 이른바 4대 법안의 무리한 강행방침을 재고해야 한다.

입법권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다. 숫자를 믿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발상은 입헌주의를 위협하는 반민주적인 것으로 의회독재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헌재의 국회 견제기능은 필요하며, 앞으로도 유지돼야 한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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