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지는 韓美동맹, 뜨는 美日동맹

  • 입력 2004년 8월 24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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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보 구도에 지진이 시작됐다. 진앙(震央)은 태평양 건너편 미국, 예진(豫震)은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검토(GPR) 계획이다. 문제는 GPR 계획의 주요 대상인 한국과 일본 중 한국이 이번 지진의 잠재적 피해자가 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일본은 지진에 민감한 나라다. 건물을 지을 때도 철저한 지진 대책을 세운다. 일본은 탈(脫)냉전 이후 ‘안보 지진’에도 착실히 대비해 왔다. 기존의 미일 안보공동선언(1996년)과 신방위협력지침(1997년)에 이어 내년에 다시 신안보공동선언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단적인 예다. 세계 10위권 이내의 군사대국으로 올라선 지금도 일본 안보 대책의 영순위는 변함없이 대미(對美) 동맹이다.

이는 1990년대 이후 “미일(美日)동맹을 미영(美英)동맹 수준으로 격상시키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밝혀온 미국으로서도 바라던 바다. 미 본토의 육군 1군단 사령부를 일본으로 옮겨와 동북아지역 미군의 중추전력으로 강화시킨다는 계획은 그런 두 나라간의 ‘공감대’ 속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한미동맹은 어떤가. 지난주 끝난 제11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회의 결과가 동맹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두 나라는 당초 내년 말까지로 제시된 주한미군 1만2500명 감축 완료 시점을 2년 이상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갑작스러운 미군 감축에 미처 준비가 안돼 있던 한국으로선 일단 ‘발등의 불’은 끄게 됐다. 한국측 협상대표는 “회의 결과에 만족한다”고 자평했다. 그러니 국민은 안심하고 있어도 되는가.

미국은 주한미군이 감축된다고 해서 한반도에 안보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110억달러 규모의 주한미군 전력증강이 이뤄지면 대북 억지력은 더욱 공고해진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미군이 대거 빠져나갈 경우 한국민 사이에 확산될 ‘심리적 공백’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

미국의 GPR 계획에서 핵심은 이것이 ‘유동(flow) 개념’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붙박이식 군대’에서 탈피해 시공을 초월해 넓은 지역을 투사하는 기동군이 21세기 미군의 모습이다. 과거 대북 억지력에 주안점을 뒀던 주한미군의 미래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미국의 본질적인 전략 변화에 한국이 얼마나 대비해 왔는가 하는 점이다.

요즘 우리 정부의 주된 관심사는 주한미군이 빠져나갈 때 생길 전력 공백을 어떻게 메우느냐는 데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군 철수 시점을 2∼3년 늦추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은 될 수 없다. ‘110억달러’ 약속만 믿기엔 미국이 추진하는 GPR 계획의 함의가 간단치 않다. 미국의 전력증강은 대북 억지력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 미군 개편의 맥락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빠듯한 나라 살림에 자주국방을 위한 예산 증액도 여의치 않을 게 뻔하다. 우리는 눈앞의 현안에만 매달리다 보다 큰 그림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일본은 미국의 전략 변화에 부응해 21세기 안보 토대를 다지고 있다. 한마디로 ‘뜨는’ 미일동맹이다. 반면 한국의 안보 전략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믿을 건 한미동맹인데, 이마저 ‘지는 해’처럼 보이니 말이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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