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38>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8월 23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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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彭城에 깃드는 어둠(5)

말투는 퉁명스럽고 표정은 굳어 있어도 범증을 보는 패왕의 눈길에는 은근한 기대가 실려 있었다. 범증이 물을 때는 그 답을 알고 있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범증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제가 사람을 풀어 알아보니 왕릉의 늙은 어미가 아직도 풍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어서 사람을 보내 그 어미를 잡아다놓고 왕릉을 부르면 제가 아니 오고 어쩌겠습니까? 또 듣자 하니 그 동안 왕릉은 제법 효자 소리를 들으며 산 듯합니다. 한왕 유방의 가솔을 살리기 위해 대왕의 노여움을 사면서도 제 어미를 그렇게 버려두는 자의 효도가 오죽하겠습니까만, 그래도 세상의 이목이 있으니 어미의 목숨이 걸린 일을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 말에 패왕은 당장 사람을 풍읍으로 보내 왕릉의 늙은 어머니를 잡아오게 했다. 사흘도 안돼 정말로 왕릉의 늙은 어머니가 팽성으로 잡혀왔다. 패왕은 그녀를 극진히 대접하며 달래는 한편, 사람을 왕릉에게 보내 그 늙은 어머니가 팽성에 잡혀와 있음을 알리게 했다.

그때 왕릉은 한왕의 부모인 태공(太公)과 유오(劉C)를 비롯하여 형제인 유백(劉伯) 유중(劉仲) 일가, 그리고 이제는 한나라 왕후가 된 여치(呂雉)와 번쾌의 아내 여수(呂須) 자매에다 나중에 효혜(孝惠)로 불릴 왕자와 노원(魯元)으로 불릴 공주 등 수십 명을 수레에 태우고 관중으로 떠나려던 참이었다. 무리 중에 가려 뽑은 5천 명으로 호위하여 은밀하고 신속하게 함곡관으로 나아가면 적어도 그 길목에는 그들을 막아낼 세력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팽성에서 패왕이 보낸 사람이 달려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패왕께서 장군의 자당(慈堂)을 군중에 모셔놓고 극진하게 모시면서 장군을 뵙기를 청하십니다. 장군께서 가지 않으시면 자당의 안위도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말은 그렇게 점잖았지만 내용은 왕릉의 어머니를 인질로 잡고 하는 패왕의 협박이었다. 그 말을 들은 왕릉은 기가 막혔다.

범증은 왕릉의 효성을 세상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겉꾸밈으로 낮춰 말했지만, 실은 왕릉만큼 타고난 효자도 없었다. 일찍 홀로 되어 자신만을 기른 어머니를 모시는데, 진작부터 왕릉의 효도는 흔히 세상이 칭송하는 반포(反哺)나 봉양(奉養)을 넘어서는 데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그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들어 중년이 된 그때까지도 한 치 어김이 없었다.

한왕 유방과의 불화도 실은 그 어머니의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았다. 당시로는 흔치 않게 유가(儒家)의 딸로 태어난 그 어머니는 왕릉이 어릴 적부터 삼강오륜을 가르치고 대의명분을 무엇보다 존중하게 했다. 그런데 건달시절의 유계(劉季)는 그런 왕릉을 설득할만한 대의도 명분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나중에 패공이 되고, 회왕의 명을 받아 관중을 평정할 초나라의 장수가 된 유방을 남양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다. 겉으로는 그럴싸했지만 왕릉이 보기에 유방은 아직도 자신이 무엇이 되려는 지조차 모르는 한낱 유민군(流民軍)의 우두머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게 유방을 따르는 묘한 행운과 엄청나게 불어난 그 세력에도 불구하고 왕릉으로 하여금 선뜻 유방을 따를 수 없게 했다. 그런 경원(敬遠)을 뒷골목의 세력다툼이나 왕릉의 시기심으로만 보는 것은 왕릉을 잘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헛소문일 뿐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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