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37>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8월 22일 17시 07분


코멘트
彭城에 깃드는 어둠(4)

“왕릉의 무리는 머릿수가 1만이 넘고 남양에 뿌리 내린 지도 오래됩니다. 거기다가 많지는 않아도 한왕 유방이 특히 가려 뽑아 보낸 군사와 장수가 더 있으니, 이들을 모조리 때려잡자면 적어도 2만의 대군이 필요합니다. 또 남양까지는 군사들이 맨몸으로 내달아도 팽성에서는 닷새길이 됩니다. 설령 대왕께서 도성을 지키는 군사를 그대로 몰아 오늘로 떠나신다 해도 남양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늦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우리도 유방처럼 믿을 만한 장수에게 날랜 기병 몇 백을 붙여 폐백과 인뚱이를 가지고 왕릉을 찾아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원래도 유방 밑에 들기 싫어했다하니, 10만호 식읍(食邑)의 제후면 왕릉을 달래 유방의 가솔을 오히려 우리에게 끌고 오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패왕의 간곡한 물음에도 불구하고 범증이 삼가며 머뭇거리는 말투로 그렇게 대꾸했다. 잔꾀를 쓰고 재물로 사람을 매수하는 것은 패왕의 성미에 맞지 않은 일이라, 그걸 잘 아는 범증으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이 그리 되고 보니 패왕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범증이 시키는 대로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장수 중에 특히 계포를 뽑아 날랜 300기(騎)를 딸려주며 말했다.

“장군은 당장 남양으로 달려가 왕릉을 찾아보고 과인의 뜻을 전하라. 만약 왕릉이 한왕의 가솔들을 잡아 과인에게로 귀순한다면 과인은 왕릉을 10만호후(侯)로 올리고 상장군을 삼을 것이다!”

이에 계포는 그 자리에서 패왕을 하직하고 바람처럼 남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떠날 때의 기세와 달리 계포는 사흘 만에 빈손으로 돌아와 낯없어 하며 패왕에게 말했다.

“왕릉은 이미 한왕에게 가기로 뜻을 굳힌 듯합니다. 사람을 풍읍으로 보내 한왕의 부모형제와 처자들까지 모두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들이 남양에 이르는 대로 무리를 모두 이끌고 관중으로 들어갈 작정인 듯합니다.”

“그래, 과인의 뜻을 전해보셨소?”

“그리 했습니다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대왕께서 내리신 폐백과 인뚱이를 내던지면서 제 임금을 구석진 땅으로 내쫓고 그 땅과 백성을 차지한 도적이 주는 것은 천하라도 받을 수 없다고 소리쳤습니다.”

그 말에 벌겋게 달아오른 패왕이 좌우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감히 과인을 능멸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날랜 군사를 정창에게로 보내 왕릉이 관중으로 들어가는 길을 끊게 하라. 한왕 유방의 부모형제와 가솔은 모두 팽성으로 묶어 올리고, 왕릉을 따르는 자는 모조리 잡아 산채로 구덩이에 묻으라고 전하라.”

그때 다시 범증이 달래듯 말했다.

“약삭빠른 왕릉이 마침내 유방에게 붙기로 결정하고 제멋대로 끌어다 붙인 구실이니 대왕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그보다는 이제라도 왕릉을 되불러들일 방책을 찾아보심이 어떻겠습니까?”

“이미 날아간 새를 어떻게 다시 잡아 조롱에 가둔단 말이오?”

분을 삭이지 못한 패왕이 그렇게 퉁명스레 범증에게 물었다.

글 이문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