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경미/‘공권력 붕괴’ 이대론 안된다

  • 입력 2004년 8월 4일 18시 59분


최근 교도관과 경찰관이 근무 중 피살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취중에 지구대에 찾아와 난동을 부리거나 교통 단속에 거세게 항의하는 것은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만큼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끝이 없다. 체포영장의 집행을 막기 위해 지구당 사무실에 가스통을 연결하던 정치인의 모습도 목격한 터다. 올 초에는 시민단체들이 개정된 집시법이 집회의 자유를 제한한 악법이라며 불복종운동까지 벌였고, 지금까지 경찰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경찰관 살해… 집시법 불복…▼

공권력을 폄훼하고 도전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 피해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귀결된다. 일상생활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이미 한계를 넘었지만 지금이라도 공권력을 제대로 세우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 경찰 총기사용 규제 논란 (Poll)

무엇보다 먼저 우리 사회의 법 경시풍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법은 공동체의 질서유지를 위한 기본 장치이자 약속이다. 공권력은 법에 근간을 두고 있고 공권력을 존중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의무다. 그 의무를 분명히 할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자유와 권리라는 풍성한 대가를 안전하게 누릴 수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집회시위를 신고제에서 부분적으로 허가제로 변경했다. 대규모 시위 때 경찰은 폴리스 라인을 쳐 놓고 이를 넘으면 즉시 체포한다. 시위현장에 즉결법정을 설치하고 판사가 즉석 영장을 발부할 정도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불만으로 시민이 시위를 벌였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는 더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금지장소에서 막무가내로 확성기를 틀고 제지하는 경찰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시위, 문화행사를 빙자한 야간 촛불집회 등의 불법행위는 더 이상 정당화 될 수 없다. 법은 지키라고 만든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일정한 절차와 합의를 거쳐 바꿀 일이지 떼를 써서 의견을 관철시키려 해선 안 된다. 그것은 민주사회에 대한 치졸한 협박이다.

법 집행의 일관성과 공정성도 중요하다. 사안에 따라 법 집행의 잣대가 다르거나 흔들려선 안 된다. 남과는 다른 대우를 받는다거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 법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되고 공권력에 도전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불량만두소 파동 때 한 식품업체의 젊은 사장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나오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자살 소식도 연이었다. 물론 해당기관들은 조사과정의 불법행위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과연 그럴까’라는 의심도 있다. 공무원은 입법취지와 법 정신에 맞게, 사회적 형평성에 기초해 업무를 처리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불신과 원망을 가져오고, 법 무시 풍조를 낳는다.

하지만 인권과 공권력은 흑백의 논리로 저울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권력 강화가 곧 인권침해라는 주장은 무책임하다.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는 흉악범에 대해 총기를 사용하지 못해 경찰관이 피살되는 것은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없는 일이다. 교도관이 국가인권위 진정이 무서워 재소자 다루기를 꺼리고 오히려 재소자가 교도관을 살해하는 현실 역시 그렇다.

▼기본이 무너지면 남는건 혼란▼

일선 공무원이 공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수단을 정비해야 한다. 또 시민도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따로 돈을 내 자경대(自警隊)를 만들어 범죄자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공권력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다. 사회 구성원의 합의와 적정한 절차를 거쳐 제정된 법률의 엄정하고 공정한 집행, 시민의 지지와 법 준수는 그 생명체를 유지케 하는 기본이다. 기본이 무너지면 우리 사회에 남는 것은 결국 아노미와 카오스뿐이다.

허경미 계명대 교수·경찰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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