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93>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7월 1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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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바람(4)

“배에는 허풍만 가득하고 머릿속은 계집 생각과 재물 욕심만 들어찬 주제에 엉뚱한 꿈을 꾸며 중원을 바라보는 것들 때문이오. 삼진(三秦) 땅은 명장과 책사(策士)를 왕으로 세워 겹겹이 울타리를 둘러쳐 두었으니, 중원으로 나오려면 당연히 무관을 넘어 한나라 땅으로 들어오는 길을 노리지 않겠소?”

말투로 보아 그 사이 범증이 적잖이 패왕을 쑤석거린 모양이었다. 한왕 유방에 대한 패왕의 의심은 미움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져 있었다. 장량이 이때다, 싶어 패왕 앞으로 나섰다.

“대왕께서 가리키시는 사람이 한왕 유방이라면 아마도 대왕께서는 잘못 헤아리고 계신 듯합니다. 제가 보기에 한왕은 다시 동쪽으로 나올 뜻이 전혀 없어보였습니다.”

“어째서 그렇단 말이오?”

“제가 포중에서 한왕과 작별하고 오다가 돌아보니 한군이 지나간 계곡에는 먼지와 연기가 자욱하였습니다. 바로 잔도(棧道)를 부수고 불사르는 통에 나는 먼지와 연기였습니다. 그것으로 미루어 한왕께서는 두 번 다시 파촉 한중에서 되돌아 나올 뜻이 없음이 분명합니다.”

장량의 그와 같은 말에 패왕이 조금 밝아진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게 사실이오? 장(張)사도는 그 말을 보증할 수 있소?”

“이 량(良)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빠른 파발마를 포중으로 보내 알아보시면 어김없을 것입니다.”

장량이 그렇게 다짐하자 패왕의 얼굴은 더욱 밝아졌다. 하지만 끝내 한왕 성을 도읍인 양적(陽翟)으로 보내지 않고 팽성으로 데려갔다. 그 바람에 장량도 팽성까지 함께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욱 고약한 것은 팽성에 이른 뒤였다. 범증이 무어라고 쑤석였는지 한왕 유방에 대한 패왕의 의심은 갈수록 커져, 나중에는 천하에서 자신과 대적할 수 있는 게 한왕밖에 없는 것처럼 그를 걱정하고 미워했다. 장량은 그게 걱정이 되었다.

(큰일이다. 이대로 두면 패왕이 먼저 군사를 내어 한중으로 밀고 들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이 의심과 미움을 나눠 갖지 않으면 한중과 우리 한나라가 아울러 무사하기 어렵겠구나.)

그런 생각으로 가만히 사람을 풀어 천하의 형세를 살펴보게 하였다. 패왕의 주의를 끌어줄 또 다른 맞바람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패왕의 엄청난 기세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풀어 알아보니 모든 제후가 반드시 그 뜻을 받들고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제나라에서는 전영(田榮)이 이미 패왕에 맞서 일을 꾸미고 있었다.

전영은 제나라의 왕족으로 적현(狄縣)에서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 제나라 왕이 된 전담(田담)의 사촌 아우였다. 전담이 진군(秦軍)에 에워싸인 위(魏)나라 왕 구(咎)를 구원하러 갔다가 장함에게 기습을 당해 임제성(臨濟城) 아래에서 죽자, 전영은 그 아우 전횡(田橫)과 함께 패잔병을 모아 동아(東阿)로 달아났다.

제나라 사람들은 전담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자 옛 제나라 왕 전건(田建)의 동생 전가(田假)를 새로운 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역시 옛 왕족인 전각(田角)을 재상으로, 전간(田間)을 장군으로 삼아 제나라를 이어가게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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