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92>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6월 30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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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바람(3)

팽성 사람들은 그런 패왕을 자기들의 임금으로 기꺼이 맞아들였다. 망해버린 옛 초나라의

비통한 역사를 상징하는 명장 항연(項燕)의 손자, 그러나 초나라 회복의 주춧돌이 된 항량과 더불어 민초 속에서 몸을 일으켰고, 마침내는 진나라를 쳐 없애 망국의 한을 씻어준 그를 서초(西楚) 땅이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 이에 패왕은 새로 임금이 된 그 누구보다 백성들이 믿고 따르는 임금으로 팽성에 뿌리를 내려 갔다.

패왕을 따르던 막빈과 장수들도 이제 더는 전장을 떠도는 농민군의 우두머리가 아니었다. 범증은 아부(亞父)라 불리며 군사(軍師)로서 그 어떤 막빈보다 아래위 모두의 믿음과 우러름을 받았다. 계포도 그 사이 믿음을 회복해 모사(謀士)보다는 장수로서 어엿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종리매(鍾離매)와 용저(龍且)도 젊고 날랜 맹장에서 패왕이 믿고 아끼는 장군들로 자라 있었으며, 소공 각(蕭公 角) 환초(桓楚) 정공(丁公) 등도 한 갈래 군사를 이끄는 관록 있는 장수들이 되었다. 항백 항장 항타(項타) 같은 항가(項氏家) 사람들도 그저 패왕의 혈육이란 것 때문에 장수 대접을 받지는 않았다. 저마다 싸움터에서 한몫을 했다.

하지만 패왕 항우를 따라 팽성으로 오게 된 사람들이 모두 그리 좋게만 자리 잡은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왕 성(韓王 成)이 받는 대접이 고약했다. 언제나 패왕 곁에 있으면서도 볼모나 포로와 다름없는 처지였다.

관중에서의 분봉(分封) 때만 해도 패왕은 한왕 성을 한(韓)나라의 왕으로 인정하고 양적(陽翟)으로 도읍을 삼게 했다. 그러나 관중을 떠나면서 패왕의 마음은 바뀌었다. 장량이 한왕 유방을 따라간 일 때문이었다.

“장량은 한나라의 사도(司徒)인데 어찌하여 한왕 유방을 따라갔소?”

패왕의 그 같은 물음에 한왕 성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왕을 따라 관중으로 들어가 여러 달 함께 고생하는 동안에 생긴 정분 때문이겠지요. 하루 이틀 배웅하고는 이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받는 패왕의 눈길은 곱지 않았다.

한나라는 무관(武關)을 사이에 두고 한중과 이어져 있었다. 만약 장량이 유방과 한왕 성을 맺어놓으면 무관은 아무런 구실을 못하고 한중과 한나라는 한덩이가 되고 만다. 다시 말해 유방은 굳이 삼진(三秦)을 뚫고 나오지 않아도 중원으로 고개를 내밀 수 있었다. 패왕이 장량의 움직임을 날카롭게 살피는 까닭은 그 때문이었다.

한왕 성의 말대로 장량은 며칠 안돼 되돌아왔다. 한왕 유방을 포중(褒中)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옛 임금을 섬기려 돌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패왕은 제후들이 모두 봉지로 돌아간 뒤에도 한왕 성을 곁에 잡아두었다가 끝내는 자신과 함께 관중을 떠나게 하였다. 그리고 한왕 성을 끼고 가다시피 동쪽으로 돌아가던 패왕은 한나라에 이르러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아무래도 한왕은 나와 함께 팽성으로 가야겠소. 아직 천하가 안정치 못하니 무관 같은 요해처(要害處)는 다른 장수를 보내 지키게 함이 옳을 것이오.”

이 말에 한왕 성과 함께 패왕에게 불려갔던 장량이 뻔히 그 말뜻을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패왕에게 물었다.

“무관을 지키신다 함은 누구로부터 무관을 지키신다는 뜻이옵니까?”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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